# 7월 7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급진 우파 정당 국민연합(RN)은 577석의 프랑스 하원 가운데 143석을 얻으며 3위로 약진했다. RN은 앞선 1차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 투표에선 ‘반(反)RN’ 연대가 형성되며 후보 단일화가 이뤄져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RN은 2017년 8석, 2022년 89석, 올해 143석으로 제도권 세력을 빠르게 키우는 중이다. 르펜 원내대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좌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아니었다면 RN이 과반이었을 것”이라면서 “승리는 늦춰졌을 뿐”이라고 자신했다.# 6월 6~9일 진행된 유럽의회 선거에선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EPP)과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기존처럼 2대 정당 지위를 유지했으나 중도 성향의 리뉴유럽(Renew)이 3위에서 5위로 밀렸다. 리뉴유럽이 밀려난 3, 4위 자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주도의 유럽을위한애국자(PfE),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주도의 유럽보수와개혁(ECR)이 차지했다. 급진 우파 정치 그룹들이다. 이들이 주권국가의유럽(ESN)까지 더해 단일 정치 그룹을 형성하면, S&D를 밀어내고 유럽의회 내 제2 정치 그룹으로 올라선다.

유럽에서 급진 우파 정당이 세력을 넓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몇 년 전부터 돌풍을 일으킨 유럽의 급진 우파는 최근 제도권 정치 주류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이민, 반유럽연합(EU)을 내세우며 ‘여자 무솔리니’라는 별명을 얻은 멜로니는 2022년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했다. 나치 정권 이후 급진 우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독일에서도 급진 우파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유럽에서 급진 우파가 부상하는 원인과 배경, EU 정책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경제 불황에 그린 딜, 이민자 포용 거부감

유럽에서 급진 우파가 확산하는 배경은 경제 불황이다. 유럽의 성장이 정체되며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한국은행이 올해 2월 발간한 ‘미국과 유럽의 성장세 차별화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만 해도 미국과 유로존의 경제 규모는 비슷했다. 그러나 2023년까지 30여 년간 미국 경제가 1995년의 두 배로 확대될 동안, 유로존 경제는 1.5배로 확대되는 데 머물렀다. 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초래된 유럽의 에너지 충격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미국과 유로 간 성장률 격차를 더 벌렸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고금리 기조와 가계 실질소득 감소 등이 겹치자 경제 불만은 고조됐다. ECB는 지난 6월 기준금리를 4.5%에서 4.25%로 낮췄는데, 이는 5년 만의 금리 인하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19년 취임한 이후 EU의 대표 정책으로 밀어붙인 유럽 그린 딜도 기업과 농민의 불만을 키웠다. EU 집행위원회가 2040년까지 메탄·질소 등 농업 관련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이기로 하자, 프랑스·독일·벨기에·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농민은 트랙터를 끌고 도로를 봉쇄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또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EU 결정에 독일 자동차 업계는 강력히 반발해 왔다. 그린 딜로 비용 부담이 커지고 기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회의론이 확산했다. 급진 우파 정당은 EU의 과도한 환경 규제를 지적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반이민 정서는 급진 우파 확산의 트리거(trigger·방아쇠)로 작용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중동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이 크게 늘었고, 이후 이민·난민 정책을 두고 유럽 내 갈등이 깊어졌다. 유럽연합망명청(EUAA)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과 노르웨이, 스위스에 접수된 망명 신청 건수는 작년 114만 건으로 전년 대비 18% 늘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이민자가 몰렸던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다. 반이민 정서는 급진 우파가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양분이 됐고, EU도 결국 국경 심사를 강화하는 방향의 이주·망명 새 법안을 지난 5월 최종 채택했다.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6월 1일 이탈리아 로마 포폴로 광장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5월 1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독일을위한대안(AfD) 지지자들이 막시밀리안 크라의 연설을 듣고 있다. /로이터뉴스1

이민·환경 정책 후퇴, 보호무역 강화 전망

급진 우파의 확산은 유럽 내 정치 지형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과거 급진 우파 정당은 소수를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상승 등에 힘입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에 관여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급진 우파가 유럽의회에서 당장 저지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유럽의회를 이끌었던 중도 대연정 그룹인 EPP, S&D, 리뉴유럽에서 선출된 의원이 과반수를 상회(56%)한다. 그동안 그린 딜 입법에 협력해 온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이 대연정에 가세하면, 60%가 넘는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EU의 주요 정책 방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7월 18일 연임에 성공한 것도 중도파의 단결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울러 유럽의회 내 급진 우파 정치 그룹인 PfE, ECR, ESN은 상이한 이념적 정책과 분열로 단일 그룹으로 합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급진 우파가 그린 딜 정책 철회 등 극단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렵겠지만, 환경 우선주의 후퇴 또는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기후, 난민 문제에서 새로운 정책이 도입될 때 급진 우파는 힘을 합쳐 적극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스테펀 레네 카네기유럽 선임 연구원은 “급진 우파의 부상은 유럽 정책을 보수적으로 바꾸는 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급진 우파를 의식한 중도 우파 정당은 이민, 기후, 젠더 정책을 이미 우경화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럽의회에서 대연정 그룹 내 갈등이 발생할 경우, 급진 우파의 정책 결정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다.

유럽의 우경화는 자국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가속해 국제사회의 불안정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또 중국이 경쟁력을 갖춘 친환경 산업 부문에서 EU가 상계관세나 역외 보조금을 부과하며 EU와 중국 간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 유럽의 대중국 견제 강화는 한국 수출에 반사이익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임에 성공한 직후 향후 5년간 정책 구상을 담은 문건을 발표하며,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는 차기 EU 집행위원회가 중국으로부터의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서, 우리 수출 기업이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EU의 대중국 견제 규정을 적용받을 가능성도 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불확실성의 증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한 국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EU가 반덤핑 등 전통적 무역 구제 조치를 더욱 활발하게 구사함으로써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Plus Point

‘우파 보수당 사상 최악 참패’ 英, 급진 우파는 확산했다

나이절 패라지. /로이터뉴스1

7월 4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중도 우파인 집권 보수당은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맛봤다. 총 650개 하원 의석 중에서 단 12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1834년 보수당이 창당 이후 190년 동안 가장 적은 의석수를 기록했다. 반면 중도 좌파인 노동당은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41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로써 보수당은 총선에서 패배하며 14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이번 영국 총선에선 정권 교체 다음으로 영국의 급진 우파 정당 영국개혁당(Reform UK)이 이목을 끌었다. 영국개혁당은 2018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하원 입성에 성공했다. 확보한 의석수는 5석에 불과하지만, 득표율(14.3%)만 놓고 보면 노동당(33.8%)과 보수당(23.7%)에 이어 3위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불고 있는 급진 우파 물결이 영국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보수당 참패는 보수당 정권 14년간 삶의 질이 악화했다고 여기는 민심이 집권당을 심판한 영향이 컸다. 영국개혁당을 이끄는 인물은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나이절 패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