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0층 아동복 매장에서 손님들이 아이 옷을 고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작년 아동복과 아동용품 매출이 전년보다 26% 늘어났다”고 말했다.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업체들이 고가(高價) 상품 판매에 주력한 결과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10층은 새학기 아동복을 사려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아동복은 70%가 몽클레르·버버리·디올·아르마니 같은 외국 명품 아동복이다. 코트 하나에 100만원, 블라우스 한 벌에 20만원이 넘는다. 같은 층의 아동복 편집매장 리틀 그라운드, 분 주니어에서 파는 옷들도 모두 수입 아동복으로, 돌 지난 아기에게 입힐 재킷이 30만원이 넘는다. 신세계백화점은 27일 프랑스 유·아동 브랜드 ‘아뜰리슈’ 매장도 새로 여는데, 갓난아기 속싸개 하나가 12만원가량 한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사태로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힘들어졌지만 국내 고가(高價) 아동복 시장은 호황이다. 자녀 한 명당 돈 쓰는 어른 수는 늘어서다. 작년 우리나라 여성 1명당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며,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으로 20년 만에 절반이 됐지만, 아기가 귀해지면서 양가 조부모와 부모·이모·삼촌까지 지갑을 연다는 ‘에이트 포켓’을 넘어 이젠 ‘텐 포켓’ 시대가 됐다. 아기 안 낳은 부모의 친구까지 돈을 쓴다는 뜻이다. 유통 업체들은 이에 편승해 갈수록 더 비싼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백화점 등 유통 업체들의 아기 옷·용품 가격 부풀리기가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출산율 줄어도 커지는 국내 아동복 시장

◇귀해진 아기에 돈 쓰는 부모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아동복 시장 규모는 2020년 9120억원에서 2022년 1조2016억원으로 31.75% 성장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패션 시장은 40조3228억원에서 45조7789억원으로 13.53% 확대되는 데 그쳤다. 아동복 시장 성장세가 전체 패션 시장의 2배가 넘는다. 고가 아동복 시장이 급성장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통 업체들은 고급 아동복 매장을 앞다퉈 강화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이달 중순 압구정 본점에 프랑스 패션 업체 ‘디올’ 베이비 매장을 열었다. 아기 트렌치코트 한 벌이 200만원이나 한다. 600만원이 넘는 유모차는 재고가 없을 정도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압구정 본점 지하 2층의 명품 아동 코너에 더 많은 수입 브랜드를 들여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본점 7층 아동복 코너에 지방시·펜디·겐조 키즈 라인 같은 아동 명품을 강화했고, 경기 동탄점 아동복 편집매장 ‘퀴이퀴이’에는 끌로에·오프화이트 키즈·마르지엘라 키즈를 입점시켰다. 백화점 관계자는 “작년 아동복 매출이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고가 유모차로 알려진 부가부·스토케 매장을 지금의 1.5배로 확장하고 동물 인형 하나에 10만원 안팎 하는 영국 ‘젤리캣’ 매장도 만들기로 했다.

◇중저가 제품은 설 자리 없다

고가 아동복 시장만 커지다 보니 중저가 아동복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영·유아 전문 업체 제로투세븐은 지난해 ‘알로앤루’ 같은 중저가 아동복 패션 사업을 아예 접었다. 33억원 손실을 내면서 더는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0년 아동복 브랜드 리틀클로젯을 도입하며 아동복 시장에 뛰어들었던 코오롱FnC는 작년에 사업을 접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2~3년 사이 아동복 프리미엄 시장이 커진 반면 중저가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면서 “소비자 트렌드가 변한 것도 있지만 유통 업체들이 프리미엄 시장만 키운 탓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