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 오뚜기와 SK케미칼은 최근 재생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순환 재활용 페트(CR-PET·Circular Recycle PET)’를 100% 적용한 소스 용기를 개발했다. 순환 재활용 페트를 100% 활용해 식품 용기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국내 첫 사례다. 풀무원도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순환 재활용 페트를 활용한 식품 용기를 개발 중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조만간 순환 재활용 페트를 적용한 용기를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폐(廢)페트병을 새 페트병으로 만드는 소위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개발에 나서고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반복해서 새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어 플라스틱 생산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흔히 플라스틱을 환경의 적으로 여기지만 ‘보틀 투 보틀’이 실현되면, 플라스틱은 오히려 가장 친환경적인 재활용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보틀 투 보틀’은 지난 1월 우리나라 식약처가 식품 용기 제조에 재생 플라스틱 사용을 승인하면서 관련 제품 출시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보통 플라스틱보다 유리·종이·알루미늄 캔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재활용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한다. 유리병을 만들 때 소비하는 에너지는 플라스틱보다 최소 170% 많다. 또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률이 높지만, 재활용한 캔의 70%는 녹인 금속 안에 있는 산소를 없애는 폐산제로 재활용된다. 폐산제는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알루미늄 캔 대부분이 한 번 재활용되고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덴마크 환경학자 뵨 롬보로그는 “종이가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버리기 전까지 최소 44번은 재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순환 재활용 페트를 10% 사용한 코카콜라의 음료병 모습. 버려진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면 최대 79%까지 탄소 배출이 줄어든다. /한국코카콜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수거한 페트병 대부분은 계란이나 과일 포장재로 재활용되거나, 재생 섬유로 재활용돼 옷이나 가방, 신발 원료로 쓰였다. 이렇게 만든 재생 포장지나 섬유는 재차 재활용되진 않아, 일회성 재활용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보틀 투 보틀’은 폐플라스틱을 반복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무한 순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해외에선 이미 ‘보틀 투 보틀’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3L(리터) 이하 음료 페트병을 만들 때 재생 플라스틱을 25% 이상 써야 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매년 생산하는 페트병 재생 원료의 26%를 병 제조에 쓰고, 미국은 21%를 이용해 새 페트병으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 음료 기업 코카콜라는 현재 노르웨이, 스웨덴을 비롯한 8국에서 100% 재활용 페트 제품만 판매한다. 코카콜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처 허가가 나자 곧바로 재생 플라스틱을 10%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서도 기술 경쟁 불붙어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커지자 국내서도 페트병을 새 페트병으로 재활용하는 기술 경쟁에 불이 붙었다. 순환 재활용 페트는 폐플라스틱 페트병을 씻고 잘게 부숴 열로 섞는 ‘물리적 재활용’, 페트병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는 해중합(解重合·중합의 반대라는 뜻으로 단위체로 분해하는 화학반응) 과정을 거쳐 원재료를 새로 뽑아내는 ‘화학적 재활용’,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쉽게 설명하면 남은 빵을 잘게 부숴 쓸 만한 조각을 골라 뭉쳐 다시 빵을 만들면 물리적 재활용이고, 부순 빵을 밀가루로 되돌리면 화학적 재활용인 셈”이라고 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이 중에서도 해중합을 거쳐 버린 페트병에서 새 플라스틱을 뽑는 화학적 재활용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기술 선점을 위해 뛰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3월 중국 슈에(Shuye)의 순환 재활용 원료·페트 시설을 인수하고 관련 법인을 설립했다. 최근 제품 생산과 상업화도 마쳤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 공장에 해중합 설비를 완비한다는 계획이다. 원료 공급 공장도 추가로 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울산에 해중합 클러스터 공장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