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열린 ‘유통업법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유통 관련 규제가 10년 넘게 지속되는 동안 전통적인 유통업계의 ‘갑’과 ‘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10년의 규제를 거치는 동안 오랫동안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고 여겨졌던 대형마트보다, 이젠 다양한 판로를 찾아 해외 시장을 뛰어다녔던 식품 업체들의 입지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것이다.

본래 대규모유통업법이 대형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나 공급업체의 이익을 함부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임을 감안한다면, 전형적인 ‘갑’도 ‘을’도 없어진 지금 같은 유통 환경에서는 이 법의 실효성이 사실상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성윤 번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국내 주요 대형마트 3사의 영업이익률은 1%대 수준으로 급락한 반면, 납품하는 식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유통업체를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영업이익률은 1.8%에 그쳤고, 롯데마트는 1%, 홈플러스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식품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대형 유통업체들보다 훨씬 높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대형마트들이 유통 규제로 야간 영업, 휴일 영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라인 배송도 야간엔 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동안, 마트에 제품을 공급하는 국내 식품업체들은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몸집을 키워왔다. 국내 대형마트와 달리 다양한 원가 절감 정책을 펼 수 있는 것도 도움이 됐다. 가령 오리온 같은 회사는 해외 매출 비중이 60%가 넘다 보니, 글로벌 통합구매를 통해 구매력을 키우고 원료 확보 경쟁력을 높여 원가 절감을 할 수 있었다.

윤 변호사는 “이런 현실을 따져볼 때 현재 유통업계에선 이제 어느 한쪽이 우월적인 지위를 뚜렷하게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기업 규모나 시장 지위를 실절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막연하게 대형 유통업체는 ‘갑’이고 납품업체는 ‘을’이라고 추론하는 법적 잣대를 대고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법적 평가를 하지 않고 규제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북대 신영수 교수도 “개별 거래 관계에선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협상력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도 많다”며 “이런 경우 일방적으로 납품업체를 보호하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오히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