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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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산업부 이미지 기자입니다. 뉴스레터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혹시 이번 여름 휴가 어디로 다녀오셨나요? 베트남에 다녀오신건 아닌가요? 요즘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고, 저렴한 물가가 좋았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베트남을 관광지로만 생각하긴 좀 아쉽습니다. 베트남은 1억명의 예비 고객이 있는 소비 시장, 인구 절반이 20~40대에 달하는 트렌디한 국가이자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가 ‘사이공 모닝’을 통해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베트남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인이나 파견을 앞둔 주재원, 베트남 직원을 고용한 사장님과 베트남 한달살이를 꿈꾸는 사람들까지. 여러분이 몰랐던 베트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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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신게 무엇인가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쌀국수’를 떠올렸을겁니다. 포(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는 베트남 사람들의 주식이기도 합니다. 사실 발음상으로는 ‘포’보다 ‘퍼’에 더 가깝죠. 우리는 베트남의 국수를 모두 ‘쌀국수’라 통칭하지만 면의 모양과 찰기 등에 따라 포(pho)와 분(Bun), 미꽝(Mi quang)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우리가 소면과 중면, 칼국수와 수제비를 나눠 부르듯 말이죠.

이제 한국에서도 베트남식 쌀국수를 먹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유명 쌀국수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지점을 열기도 하고,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정착해 만든 쌀국수 가게도 많아졌습니다. 경기도의 작은 면 단위 지역에도 베트남식 쌀국수 가게가 들어서 있는걸 보기도 했습니다. 국제 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베트남 여성이 많아지면서 지방 읍면 지역에도 현지 맛을 제대로 내는 베트남 식당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금’ 두른 쌀국수, 등장!

베트남에서는 최근 400만동짜리 쌀국수가 등장해 화제입니다. 우리 돈으로 22만원, 미국 돈으로 168달러 정도입니다. 쌀국수 치고 엄청나게 비쌉니다. 이 쌀국수는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랜드마크81′에 있는 오토그래프컬렉션 호텔의 ‘오리엔탈 펄 레스토랑’이 지난달 내놓았습니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랜드마크81. 저 건물 66층에 있는 오리엔탈 펄 레스토랑이 최고가 쌀국수를 내놓았다. /이미지 기자

지금까지 가장 비싼 쌀국수는 호찌민시에서 처음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아난 사이공’이라는 식당이 6년 전 내놓은 100달러짜리 쌀국수였습니다. 그런데 오리엔탈 펄의 쌀국수가 이 기록을 경신한 것입니다.

대체 쌀국수에 뭔 짓을 해야 저 가격이 되나 싶어 찾아봤더니 쌀국수에 온갖 비싸단 재료는 다 얹어 내놓습니다. ‘금(金)’도 두릅니다. 현지 언론 VN익스프레스의 기사를 보니 이 쌀국수에는 금박과 일본산 와규, 푸아그라, 트러플 버섯 등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버터처럼 진한 맛의 와규를 네모난 모양으로 얇게 썰어내고, 1키로에 450만동(약 25만원)하는 호주산 트러플 버섯을 10g씩 얹어낸다는 설명입니다.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와 맛에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괜히 비싸 보이는 금박도 한 켠에 놓이지요.

베트남 호찌민 랜드마크81 건물 66층에 있는 오리엔탈 펄이 내놓은 최고가 쌀국수. 와규와 푸아그라, 트러플과 금박을 얹어낸다. /VN익스프레스 캡처

누가 22만원 짜리 쌀국수를 먹을까 싶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SNS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이걸 그냥 넘길리 없습니다. SNS에서 이 쌀국수가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자 해당 식당은 하루 3그릇 한정으로 판매하던 이 쌀국수 수량을 10그릇으로 늘렸다고 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신기하고 놀랍다” “유럽에서 비슷한 가격의 쌀국수를 먹었는데 거기엔 아름다운 전망도, 비싼 재료도 없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들이 쌀국수의 미학과 전통을 파괴시켰다”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 쌀국수의 맛이 상상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갈비탕에 푸아그라와 트러플 버섯 등을 섞어 먹는 느낌인데, 과연 맛있을까요?

◇내 영혼의 쌀국수

최고가(最高價) 쌀국수는 아니지만 일반 쌀국수 물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 노점상에서는 3만~4만동, 번듯한 쌀국수 식당에서는 5만~8만동 수준이면 고기 가득넣고 팔팔 끓인 쌀국수 한그릇을 뚝딱 먹을 수 있었거든요. 지금도 비슷한 가격에 파는 식당들이 있긴하지만 쌀국수 가격의 상한선이 좀 높아졌다고 느껴집니다.

최근에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시켜먹으려고 하다가 가격에 눈이 튀어나올 뻔 했습니다. 일반 쌀국수는 9만3000동(5200원), 와규를 넣었다는 쌀국수는 16만3000동(9000원)이었거든요. 대체 언제부터 10만동에 육박하거나 그걸 넘는 가격을 주고 쌀국수를 먹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앞집에서는 ‘스페셜’ 쌀국수를 15만~20만동에 팔고 있었습니다. 예전 쌀국수를 생각하던 저는 눈이 띠용하고 나올만큼 충격이었는데 한국에서 1만원 넘는 쌀국수를 먹던 친구들은 가격이 저렴하다며 좋아하긴 하더라구요.

베트남 일반 쌀국수 가격도 많이 올랐다. /그랩 애플리케이션 캡처

최근 베트남의 ‘쌀 가격’이 오르면서 쌀국수 가격이 더 높아질까 걱정이 됩니다. 지난 7월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인 인도가 식량난을 이유로 쌀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자 베트남 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치솟았거든요. 베트남은 인도, 태국과 함께 세계 3대 쌀 수출국입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의 수출 규제 이후 베트남과 태국의 쌀 가격은 20% 올랐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최근 쌀 중개인들이 더 높은 금액을 받기 위해 기존 계약을 파기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쌀국수야 말로 베트남을 상징하는 ‘소울푸드’인게 분명합니다. 저 역시 아침마다 베트남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어깨를 맞대고 같은 바구니에 담긴 야채를 툭툭 뜯어가며 먹던 쌀국수의 맛과 노점상 전구 불빛에 의지해 야식으로 먹던 비빔 쌀국수의 맛을 잊지 못합니다. 쌀국수 한 그릇 사먹는 가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베트남 여행의 재미도, 베트남 살이의 이점도 줄어들겠죠. 가장 비싸다는 쌀국수는 못 먹어도, 길거리 저렴한 쌀국수는 오래오래 남아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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