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31일 서울 명동역 근처 아성다이소 매장. 10대 여학생 2~3명이 잇따라 들어와 “리들샷 없어요?”라고 물었다. 아성다이소(이하 다이소)는 본래 올리브영에서 50mL에 3만원 넘게 파는 한 기초 화장품 앰풀 제품을 12mL(2mL짜리 6개)로 용량을 줄이고 제품 성분비와 포장도 다르게 만들어 이달 초부터 3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다이소와 올리브영에 각각 납품하는 화장품 제조사는 같은 회사다. 성분 비율은 조금 다르지만 효과에 큰 차이가 없고 가격은 훨씬 싸다는 소비자 후기가 알려지면서 다이소 판매 제품은 출시 2주 만에 초도 물량이 모두 팔렸다.

그래픽=양인성

500원, 3000원, 9900원만 넘겨도 조마조마하다. 눈 뜨면 물가가 솟구치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국내외 유통 업체들이 한 푼이라도 더 싼 제품을 팔기 위해 맞붙는 ‘초(超)저가 경쟁’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생필품 제조 업체들이 1원이라도 더 싼 제품을 팔기 위해 다퉜던 ‘1차 초저가 경쟁’, 2010~2020년대 대형 마트들이 10원 단위로 값을 깎아가며 주도하던 ‘2차 초저가 경쟁’이 있었다면, 이젠 대형 마트에 이커머스, 생활용품 전문점과 버티컬 플랫폼까지 모두 가세한 ‘3차 초저가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100~1000원대 제품을 판매하는 균일가 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가 초저가 제품의 맹공으로 가파르게 매출을 올리면서, 최근 업계에선 규모가 훨씬 큰 유통 업체인 국내 1위 대형 마트 이마트와 1위 화장품 멀티숍 CJ올리브영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1위 이커머스 업체 쿠팡도 해외 온라인몰 알리익스프레스의 저가 공세에 맞서기 위해 전략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화장품 500원, 패딩 5000원…‘3차 초저가 경쟁’ 불붙는다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화장품 250여 종의 가격은 500~5000원. 모두 균일가다. 초저가 제품의 물량 공세 덕분에 다이소의 지난 1~8월 화장품 매출은 전년보다 160%가량 늘었다. 업계에서는 작년 매출 2조9457억원을 기록했던 다이소가 올해 어렵지 않게 매출 3조원을 넘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국내 1위 화장품 멀티숍 CJ올리브영이 다이소의 가파른 성장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뷰티 멀티숍과 균일가 생활용품점이 취급하는 물품은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고 봤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최근엔 결국 ‘가격 경쟁력’이 매출 성패를 가르게 됐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마트도 균일가 생활용품 전문점과의 초저가 경쟁까지 의식하며 ‘반(半)값’ 시리즈 상품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이마트는 ‘반값 한우’ ‘반값 삼겹살’을 잇따라 판매하기 시작했고 롯데마트 역시 반값 킹크랩으로 소비자 끌어 모으기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다이소의 3000원 기모 바지, 5000원 패딩 조끼 같은 초저가 의류에 대항하기 위해 ‘반값 청바지’를 출시했다. 전국 40개 지점에서 SPA 브랜드의 평균 청바지 판매가보다 50% 저렴한 스판 청바지를 1만9800원에 판매한다.

◇품목별로 싸운다

국내 이커머스 1위 업체 쿠팡은 최근 신선식품 할인 행사에 부쩍 힘을 주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가 각종 공산품을 초저가·무료 배송으로 판매하는 정책을 펴면서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톱 4위에도 들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알리익스프레스가 아직 취급하지 않는 ‘신선식품’ 품목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알뜰장터’ ‘로켓프라이데이’ 같은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고 미국산(産) 우삼겹이나 전복 같은 신선 식재료를 특가에 판매한다.

지마켓과 옥션은 해외 이커머스가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는 품목인 국내 가을·겨울 패션 품목에 대한 70% 할인전을 시작했다. 11번가도 초저가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9900원샵’을 열었다. 각종 주방용품·스포츠용품·반려동물용품 등을 무조건 1만원 미만으로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