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북한산 선운각에서 나이키의 ‘웰니스’ 행사. 한옥 대청마루에 신제품을 전시해놓았다. /나이키코리아

지난 달 31일 서울 북한산 선운각. 너른 마당과 고즈넉한 한옥이 있는 카페·예식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이날 이곳에서 50명의 인플루언서를 모아놓고 ‘나이키 웰 콜렉티브 서울 웰니스 데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치렀다. 행사자들은 한옥 안방에서 요가를 했고, 말린 쑥을 모아 스머지 스틱(Smudge stick·말린 풀 묶음을 일컬음. 여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서 항균 효과를 얻거나 공기 냄새를 바꾸는데 쓴다)도 만들었다.

나이키 관계자는 “이번 행사가 건강한 삶을 강조하는 것이었던 만큼, 화려한 서울 도심보다는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자연경관을 품고 있는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한 한옥이 행사장으로 적합할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해외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옥에서 연일 행사를 열고 있다. 서울 청담동이나, ‘팝업의 성지’ 성수동만큼이나 해외 업체들이 주목하는 장소가 서울의 한옥이다. 세련된 도심 건물에서 치르는 행사보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진행하는 이벤트가 20~30대 젊은 소비자들에겐 더 기억에 남는다고 판단해서다. 이채로운 한옥 건물에서 행사를 치르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북촌·서촌부터 도심 외곽 우이동까지 찾아나서고 있다.

◇나이키부터 구찌까지, 한옥을 찾다

작년 5월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은 서울 종로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가회동 한씨가옥 ‘휘겸재’에서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뵈브 클리코가 새롭게 출시한 제품을 알리는 행사를 열었다. 손님들은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 아래 놓인 식탁에서 대구 요리 등을 먹었다. LVMH 관계자는 “아름다운 한옥에 상차림을 펼치면 샴페인의 빛깔과 멋이 더욱 도드라질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프랑스 패션·뷰티 업체 샤넬도 작년 3월 휘겸재에서 고객들이 새 향수를 뿌려볼 수 있는 ‘조향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한옥 공간을 돌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수를 찾는 체험을 했다.

작년 5월 서울 종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의 패션쇼. 경복궁에서 패션쇼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구찌코리아

이탈리아 패션 업체 구찌는 작년 5월 우리나라 종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2024년 크루즈 컬렉션을 아시아 최초로 공개하는 장소로 우리나라 경복궁을 고른 것이다. 경복궁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자, 조선 시대 4대 궁(宮) 중에서도 으뜸인 장소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패션쇼가 열리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글로벌 업체들은 한옥에서 행사를 치를 때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이나 음료도 보다 한국적인 멋을 강조한 것을 내놓는 것을 선호한다. 구찌는 쇼가 끝나고 한국식 다과를 곁들인 파티를 서울 종로에서 열였다. 나이키는 선운각 행사에서 우리나라 전통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놨다. ‘해산물 귤 김치’ ‘독새기콩두부’ ‘옥돔 튀김’ ‘거창 탱자약주를 섞은 스파클링 음료’ 등이다.

◇삼성전자, LF도 한옥 찬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한옥에서 행사를 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작년 10월 프리미엄 가전 제품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을 서울 종로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 갤러리 지우헌에서 소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첨단 식기세척기, 인덕션 같은 제품을 소반과 병풍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격조 있는 인테리어를 구현하길 원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7월 서울에서 첫 갤럭시 언팩 행사를 열 때도 한옥 콘셉트의 포토존을 만들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채경선 아트디렉터가 코엑스 전시장 곳곳에 전통 한옥의 문창살을 접목, 마치 한옥 아래 있는 듯한 느낌을 강조했다.

LF 계열의 식품회사인 구르메F&B코리아는 올해 초 서울 삼청동 한옥마을에 한옥 카페 콘셉트의 매장 ‘메종 드 구르메(Maison do Gourmet) 삼청’을 열었다. 한옥처럼 중정이 있고, 별채와 안쪽 공간이 구분된 건물에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