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가까이 고공 행진을 펼치던 국내 위스키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작년 한 해 역대 최대치인 3만586t을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부터 차츰 줄어드는 모양새다. 지난 1월의 위스키 수입량은 2031t으로 전년 같은 달 수입량인 2801t보다 27.4% 가량 줄었다. 수입액 역시 지난 2020년 1억3246만달러에서 2021년 1억7534만달러, 2022년 2억6684만달러로 늘다가, 작년 2억5957만달러로 꺾였다.

거침없이 확대됐던 위스키 시장이 정체를 맞자, 일부 주류 수입 업체들은 빠르게 위스키 관련 사업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조니워커’ 등을 수입하는 위스키 수입사 디아지오코리아는 10년 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 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신세계 L&B도 위스키 제조 신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그래픽=김하경

◇3년의 황금기 지나 ‘주춤’하는 위스키

코로나 확산 직후인 지난 2021년부터 3년여 동안 위스키는 국내 시장에 내놓기가 무섭게 팔리는 제품으로 통해왔다. 작년 상반기까지 ‘발베니’나 ‘맥켈란’ 등은 물량이 많지 않아 리셀 시장에 내놓아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꼽혔다. 이들 제품 물량이 풀렸다는 소문이 나면 가게 문이 열리기 전부터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구매하는 ‘오픈런’ 현상도 자주 빚어졌다.

위스키 시장에 소비자들이 쏠리자 기업들이 위스키 판매에 열을 올렸고, 신세계 L&B와 롯데칠성주류 같은 대기업 자회사들은 너도나도 위스키 수입량을 늘렸고 주류 전문 매장도 강화했다. 일각에선 위스키 신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TF팀도 꾸렸다.

3년간의 전성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 건 올해 초부터다. 지난 설을 겨냥해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4800만원에 내놓은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달모어 45년’이나 현대백화점이 설 선물로 출시했던 8000만원대 ‘글렌피딕 60년’ 등이 한 병도 안 팔렸다는 것이다. 작년 ‘고든앤맥페일 글렌리리벳 제너레이션스 80′ 같은 제품이 한 병 2억원이 넘는데도 국내에 들어온 두 병이 모두 팔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홍준의 주류 전문가는 “위스키 인기가 살짝 꺾이고 리셀 가격도 낮아지면서 국내에선 이제 중저가 제품 위주로 팔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여행 정상화도 위스키 인기 둔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홍 전문가는 “엔저 현상이 지속되니 위스키를 국내보단 외국에서 사오는 경우가 최근 늘었다. 고가 제품일수록 국내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관세청의 수입 주류 통계엔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직접 사온 주류나 면세 상품 매출은 포함되지 않는다.

위스키 인기가 주춤하자 주류 업체들은 대안을 찾는 모습이다. 신세계 L&B는 위스키 제조 신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비(非)위스키 제품인 스파클링 와인과 진·럼·보드카의 수입·판매를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롯데칠성주류도 그간 새 위스키 증류소 부지를 찾는 데 열을 올렸으나, 최근엔 부지 탐색을 잠정 중단한 모습이다. 위스키 사업은 공장을 짓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제품 숙성 시간도 길어 수익성을 내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주류 유행, 더 짧고 빨라진다”

일각에선 국내 주류 유행의 트렌드가 점점 더 빠르게 바뀌면서 폭발했던 위스키의 인기도 최근 정체기를 맞게 됐다고 보고 있다. 과거엔 주류 유행이 2~3년은 갔으나, 최근 소셜미디어 바람을 타면서 수입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의 인기도 빠르게 커졌다가 그 거품이 금세 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수입 주류 칼럼니스트는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술도 남과 다른 것을 마셔야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기의 정점을 찍은 위스키나 와인보단 다른 술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에 수입되는 주류 주종은 대부분이 위스키였으나, 최근엔 데킬라·진·럼 같은 종류의 비(非)위스키 수입량이 계속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비위스키 주종인 데킬라의 국내 수입 금액은 2022년 586만달러로 전년보다 95%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