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소비자들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티몬 위메프 본사 대표실에 피해자들의 호소문이 붙어 있다. 티몬과 위메프 등의 모기업인 큐텐의 구영배 대표는 이날 사태 발생 후 첫 입장문을 내고 "내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이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정산 지연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박상훈 기자

입점 업체에 수천억원의 판매 대금을 제때 정산하지 못해 소비자 ‘환불 대란’을 일으킨 이커머스 티몬과 위메프가 29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날 오후 “거래 중단과 판매자 이탈로 현금 흐름이 급격히 악화됐다”며 “판매자와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기업회생은 빚을 갚지 못해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받고, 법원의 지휘를 받아 기업을 살리는 절차다. 법원이 기업회생을 결정하면,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판매자들이 거래 대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회생 개시로 모든 채무 상환이 중단되고, 기업이 채무 일부를 탕감 받으면 판매 대금을 못 받는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티몬과 위메프가 파산을 신청하면 돈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

정부는 지난 5월 두 회사의 판매자 미정산 금액을 약 2134억원으로 추산했다. 6월 이후 정산되지 않은 금액까지 더하면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티메프 판매자들은 기업회생 신청 소식이 알려지자 “이제 다 끝났다”며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구영배 큐텐 대표

티메프 사태의 핵심 책임자인 구영배 큐텐 대표는 이날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구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고,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티몬·위메프에서 5월 한 달간 발생한 미정산 금액은 이달 25일 기준 2134억원 규모다. 이는 종전에 알려졌던 1700억원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티몬과 위메프는 지난 6~7월 대규모 할인 행사를 벌이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이를 합치면 피해 규모가 최대 1조원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티몬·위메프는 이날 오후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두 회사의 오너라 할 수 있는 구영배 큐텐 대표가 “지분 매각 등 피해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첫 입장을 밝히고서 불과 8시간 후였다. 업계 안팎에서 “피해 수습을 위한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회생 개시되면 판매자 정산 중단

앞으로 법원은 티몬과 위메프의 기업회생 신청서를 검토한 뒤,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등을 판단해 회생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양사의 모든 채무 상환이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판매자들에 대한 거래 대금 역시 빚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정산이 중단되는 것이다. 한 기업회생 전문 변호사는 “회생 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부채 일부가 탕감되기 때문에 전체 채무의 20~30% 정도를 갚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법원에서 기업회생 절차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티몬·위메프는 파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경우 두 기업은 사옥 등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데, 담보를 대가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우선하여 돈을 돌려받게 된다. 티몬의 부채 총액은 2022년 기준 7859억원, 위메프 부채 총액은 2023년 기준 3318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자들에게 돌려줄 돈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래픽=박상훈

◇”책임진다”더니 8시간 뒤 회생 신청

구영배 큐텐 대표는 이날 오전 정산·환불 지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티몬·위메프 모기업인 큐텐 창업자인 구 대표가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위메프 대금 미정산 사태가 처음 일어난 지난 8일 이후 21일 만이다. 그는 “제가 보유한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구 대표가 제시한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 대표가 보유한 비상장 주식의 가치가 얼마인지 산정도 어려운 데다가, 매각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큐텐 지분 42.8%와 큐텐 산하 물류기업 큐익스프레스 지분 29.4%를 보유하고 있다.

큐텐도 재무 상태가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싱가포르기업청에 따르면 큐텐은 적자가 쌓여 누적된 결손금 역시 2021년 말 기준 4304억원에 달한다.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1454억원인 데 반해, 1년 내 갚아야 하는 부채는 5177억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기업 특성상 부동산 등 처분할 만한 자산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티몬·위메프 판매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는 “큐텐 자체가 부실덩어리라는 게 입증됐는데, 대표 지분을 누가 제값 주고 사겠느냐” “지분을 매각하고 도망치겠다는 것 아니냐. 우리를 속였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검찰, 전담팀 꾸려 수사 돌입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이날 전담 수사팀을 꾸려 티몬과 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법조계에서는 티몬·위메프 측이 판매 대금 정산이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판매자와 계약을 유지했다면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고, 티몬·위메프에서 발생한 거래 대금을 다른 용도로 활용한 것이 확인된다면 배임·횡령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 역시 구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목주영 큐텐코리아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티몬·위메프에서 매달 발생하는 1조원 내외의 거래 대금을 어디에 썼느냐는 것”이라며 “금감원·공정위 등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결국 수사 당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 정무위는 30일 오후 2시 구 대표와 티몬·위메프 대표 등을 불러 긴급 현안 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정무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출석 의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회생제도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법원의 감독하에 빚의 일정 부분을 갚고 나머지는 탕감받는 제도다. 법원은 기업이 제출한 회생 신청서를 토대로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등을 판단해 통상 일주일 안에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기업이 가진 빚은 상환이 중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