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무대에서 사라질 텐데...”

은퇴가 남일 같지 않은 40~50대. 인생 후반전에서 ‘~걸’이라고 후회하는 ‘은퇴 껄무새(~걸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뜻)’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할까?

점심시간 직장인들로 붐비는 서울시청 인근 거리./연합뉴스

8일 본지 경제부는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60~70대 은퇴 생활자 1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이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자세히 들어봤다. 100세 시대를 살 4050 세대가 실패를 줄이려면, 앞서 내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10인의 인생 선배들은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었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런저런 후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은퇴 준비는 일찍 시작할걸

“나는 회사에 충성해서 열일했는데, 돈은 일하게 하지 않았네요.”

중소기업에서 29년 일하고 은퇴한 최모씨는 직장에 다닐 때 경제적인 여유를 넉넉히 마련해 두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최씨는 “집 사고 애들 가르치고 하다 보면 노후 자금엔 여유가 없어지는데, 회사 다닐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면서 “은퇴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가급적 30대부터 시작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20~30년 뒤의 먼 미래 일이라고 해서 여유 부리지 말고, 일찍 시작하면 자금 축적 기간도 길어지고 그만큼 대비할 시간도 길어지니 유리하다는 것이다.

김은혜 NH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을 너무 소홀히 생각했다면서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면서 “은퇴 전에 부채를 최대한 줄여 놓고, 자녀는 경제적으로 독립시키고, 퇴직금은 한 번에 다 쓰지 말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짱이 말은 듣지 말걸

노후에 받는 연금은 시간이 지나고 나야만 진가가 발휘되는 상품이다. 젊을 때는 잘 모르다가 은퇴 후 연금을 받는 시점에 뒤늦게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회사 다닐 때 힘들어도 연금을 하나 더 넣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나 있겠냐면서 연금 가입을 무의미하다고 말했던 친구를 믿었던 것을 후회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33년간 일하고 퇴직한 최영일씨는 “국민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 이른바 3대 연금을 잘 챙겨야 한다”면서 “퇴직금은 일시금 수령보다는 10~15년 연금 형태로 받아야 세금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인간 관계도 신경 쓸걸

은퇴하고 나서 ‘노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남성들이 있다. 현직에 있을 땐 놀고 싶다고 하면서도 막상 은퇴 후엔 잘 놀지도 못한 채 외롭게 지내는 것이다. 직장과 집만 오가며 사회적 역할 수행에 충실했던 남성들 입장에선 은퇴 후의 여유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은퇴 후엔 활동 근거지를 회사에서 지역 사회로 바꿔야 하는데, 회사 직책과 승진에만 매달려 살아왔다면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만들지 못한 채 고립되고 만다.

토목 회사에서 40년간 근무 후 퇴직한 김모씨는 “은퇴 후 노는 것처럼 좋은 게 없는데, 노는 게 힘들면 안 되니 20~30년 동안 즐기면서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장수 혁명이 가져다준 인생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 자아 실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만 48세에 조기 은퇴한 박헌정씨는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아내와 함께 ‘해외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뭔지 미리 찾고 알아내야지, 어영부영하다간 몇 년이 후딱 지나간다”면서 “취미는 깊이 있고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취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은퇴 후엔 세상 인심이 각박하다며 겁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남한테 무신경하게 살면서 직장 일에만 몰두했던 사람은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아요.”

◊여행을 좀 더 다닐걸

은퇴하고 나면 여행이나 실컷 다니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돈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몸이 튼튼해야만 가능하다. 특히 은퇴 초기 건강이 좋았을 때 여행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나중에 건강이 좋지 않아진 뒤에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교수로 일하다 은퇴한 김모씨는 “젊었을 땐 일이 바빠서 은퇴 후로 여행을 미뤘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무릎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녔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동엽 상무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치아와 시력이 좋으면 노후에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