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업 물려받으셔서 2대째 운영하시다가 곧 은퇴 예정입니다. 임대 수익과 부동산 등으로 부모님 노후 준비는 충분히 완료되었어요.”
“부모님은 서울 거주하시는데 15억 자가입니다. 그리고 부부 교사여서 노후 대비도 문제없습니다.”
요즘 20~30대 청춘들이 이상형을 찾겠다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블라인드)에 올린 글들의 일부다. 본인의 나이, 외모, 직업, 성격, 학벌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이른바 셀소(셀프 소개)글인데, 재밌게도 부모의 노후 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아 눈길을 끈다. 고령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부모의 노후 준비도 미혼 남녀 만남에 중요한 스펙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사회적 변화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일부 셀소글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앞으로 10년쯤 뒤에는 나이나 외모와 같은 셀소 필수 기재 항목으로 ‘부모님의 노후 준비 유무’가 자리잡게 될 지도 모른다. ‘낳아서 지금까지 잘 키워줬으니 앞으로는 은퇴한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녀에게 도움을 바라면 안되는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지금 한국에선 자녀 도움으로 노후 생활을 꾸린다는 고령자가 전체의 23% 정도이지만 앞으로 이 비율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선진국의 경우 그 어떤 나라도 자녀가 부모의 메인 생활비를 도와주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선 자녀 도움을 받아서 노후 생활을 한다는 고령자 비중이 0.4~1.9%로 매우 낮다고 한다.
자녀 부양이 아닌 ‘셀프 부양 트렌드’는 통계청 자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통계청이 매년 발간하는 고령자 통계를 살펴 보자. 65세 이상 고령자 중에 노후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한다는 응답자 비중은 2011년 51.6%에서 2019년 61.2%까지 높아졌다. 반면 자녀 등의 도움을 받는다는 비율은 같은 기간 39.2%에서 23%로 크게 낮아졌다.
자녀 도움 없이 노후를 보내는 선진국 노인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생활하는 것일까? 은퇴할 때 수억원씩 통장에 넣어 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연금으로 확보해둔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다.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선 노후 주요 수입원이 연금인 노인 비율이 60~90%를 차지한다”면서 “반면 한국은 노후에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 공무원, 군인 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은 전체의 17%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도 선진국처럼 셀프 부양이 점점 대세가 되어 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해 3배속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노부모 부양 기간이 평균 5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30년까지 늘어났다. 노인인 자녀가 노인인 부모를 도와주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100세 시대에는 은퇴 전에 연금에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노후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셈이다. 은퇴 전문가들은 특히 부부가 같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벌이 부부라면 이미 각자 가입해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외벌이 가정의 전업주부라면 임의가입을 고려해 봐야 한다.
트러스톤 연금포럼에 따르면, 전업주부가 30세부터 60세까지 한 달에 9만원씩만 임의가입을 하면, 죽을 때까지 약 52만원씩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은 물가가 오르면 받는 액수도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 늘어나기 때문에 연금 중에서 가장 유리하다.
그런데 만약 연금 준비를 충분히 해두지 못한 채 퇴직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 대표는 “살고 있는 집이나 고향 땅을 과감히 은행에 맡겨 놓고 생활비로 받아 쓰다가 세상 떠날 때 정산하는 방법을 권한다(주택연금, 농지연금)”고 말했다.
“그래도 갈 때 애한테 집 한 채는 주고 가야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살에 세상을 떠나면서 일흔 먹은 자녀에게 집을 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택연금을 신청한 후에 집값이 크게 오르는 경우가 걱정되겠지만, 그런 경우엔 정산을 해서 남는 금액은 자녀에게 상속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