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상황에서 자산을 불리기는 쉽지 않지만, 무전장수(無錢長壽)는 더 끔찍하다. 예비 은퇴자들이 나이 들어서도 금융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7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지난 8월 만 50~65세 남녀 51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8.4%가 은퇴 이후에도 금융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대답했다. 또 예비 은퇴자들은 평균 3억원 정도를 은퇴 후 금융 투자 자금으로 쓰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은퇴 후에 3억원을 통장에 넣어두고 매달 100만원씩 빼서 쓴다면 25년 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세금과 거래 비용은 고려하지 않음). 하지만 이 돈을 연 2% 수익률로 굴린다면 계좌의 수명이 34년으로 늘어나고, 연 3%로 운용하면 수명이 44년까지 늘어난다. 은퇴 후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내 돈의 수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건강 수명만큼 중요한 자산 수명
인생 100세 시대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이다. 오래 살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은퇴 생활 기간은 20년이지만, 100세까지 살면 두 배인 40년으로 늘어난다.
왕성하게 일하는 현역 시절엔 심하게 사치하지 않는 한, 금융 자산이 쉽게 바닥나진 않는다. 하지만 은퇴 후 명함이 사라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월급 받아 모아둔 자산을 조금씩 헐어가면서 생활하게 되는데, 이때 꺼내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 바닥이 나고 만다. 연금 준비를 충분히 해 두지 않은 상황에서 내 신체 수명보다 먼저 통장 잔액이 먼저 0원이 된다면, 꿈에 그리던 세컨드 라이프는 엉망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은퇴 자산의 수명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투자 시계가 길어진 만큼,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나오는 자산을 중심축으로 삼고, 5~10년을 내다보면서 성장성 높은 산업에 장기 투자하고, 해외의 다양한 국가와 자산군에 분산 투자하라고 권한다.
김진웅 NH WM마스터즈 수석 전문위원은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투자를 계속해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빈손으로 지내지 않는다”면서 “내 신체 수명과 내가 가진 돈의 수명이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평생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은퇴 후에는 안전한 자산 관리가 중요한 만큼, 주식 대비 원금 손실 위험이 낮으면서 예금보다는 높은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역 시절에 연금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해 둔 상태라면 좀 더 편안한 투자가 가능하다.
◇연 3%로 굴리면 자산 수명 19년 연장
“100세 시대라는데 노후 자금으로 모아둔 목돈을 가급적 지키면서 매달 일정한 수입이 나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대다수 예비 은퇴자가 갖는 공통된 고민이다. 또박또박 월세가 나오는 목 좋은 부동산이 있다거나 손님들이 밀려올 대박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면 고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김 위원은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이른바 3층 연금을 통한 노후 생활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미흡하다면 꾸준한 현금 흐름이 나오는 자산들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짜라”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금융 상품으로는 고배당주, 우선주,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 하이일드채권(고수익 고위험 채권), 인프라 펀드 등이 있다. 이들 상품은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아서 단기 시세 차익을 얻기는 어렵지만 월급처럼 매달 혹은 매 분기 정기적인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은퇴 생활자에게 알맞다.
특히 리츠는 부동산 임대 사업의 대안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기준 배당 수익률이 연 11%(세전) 정도로, 은행 예금 금리에 비해 크게 높았다. 리츠는 빌딩을 살 만큼 거액이 없어도 은퇴 후 월세 받는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경기 침체로 임대율이 떨어지면 리츠의 배당 수익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