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노후에 각자 연금을 받는 ‘연금 맞벌이 부부’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수급자 500만명을 돌파한 국민연금의 경우, 부부가 모두 노령연금을 받는 경우는 지난해 42만7467쌍으로, 2019년 대비 20.3% 증가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전업주부라고 해도 국민연금에 임의가입하는 사례도 많아졌으니, 앞으로 연금 맞벌이는 더욱 대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연금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어떤 연금 조합이냐에 따라 유불리가 생길 수 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사망해서 유족연금이 나오게 될 때 얘기다.
유족연금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평소엔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막상 본인에게 닥쳐서 내용을 알게 되면 다들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내가 낸 것 만큼은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유족연금 제도에 중복 급여 금지 조항이 있어서 생기는 일들이다. 만약 내 연금이 있는데 유족연금(원래 연금의 60%)이 생기면, ‘내 연금+유족연금의 30%’를 받든가, 아니면 유족연금(내 연금은 소멸됨)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연금 간에 중복 급여가 금지되다 보니, 유족연금 상황에서는 연금 맞벌이 부부 사이에도 계급이 생긴다. 부부가 ‘공무원연금+국민연금’으로 받고 있을 때가 ‘국민연금+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공무원연금’ 커플보다 훨씬 유리하다.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직역연금(군인연금, 사학연금 등)과 국민연금 모두 중복급여 금지 조항이 있지만, 개별 연금끼리는 서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월 100만원, 월 100만원씩 연금을 받고 있는 부부의 사례를 살펴 보자<표 참고>. 부부 공무원인 경우, 남편 사망시 아내가 받을 연금 총액은 130만원이다. 아내 연금 100만원에 남편 유족연금의 50%인 30만원이 더해진 액수다.
그런데 남편이 국민연금 수급자이고 아내가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내 연금 100만원에 남편 유족연금(원래 연금의 60%=60만원)을 받을 수 있어 총 160만원이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국민연금’ 조합의 부부는 유족연금을 받을 때 억울한 심정을 갖게 된다. 앞서 설명했듯, 남편 사망 후엔 남편 유족연금과 본인 노령연금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남편 유족연금(60만원)은 금액이 작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아내 연금에 남편 유족연금의 30%(18만원)만 추가된다. 결국 아내가 받을 수 있는 연금 총액은 118만원으로,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커플과 비교하면 42만원 손해다.
그나마 아내가 국민연금으로 100만원 받고 있다면 상황이 낫다. 아내가 받는 국민연금 액수가 작은 부부야말로 유족연금을 받을 때 더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민연금 맞벌이 부부가 가장 손해’라거나 ‘수십년 세금만 낸 꼴이 된다’는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남편이 국민연금 100만원, 아내가 국민연금을 40만원 받고 있었는데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①남편 유족연금으로 60만원을 받든가, 아니면 ②아내 연금에 남편 유족연금의 30%(18만원)를 더한 58만원(40만원+18만원) 중에서 골라야 한다. 당연히 금액이 2만원이라도 더 높은 ①번 선택지(남편 유족연금 60만원)를 고르게 될 텐데, 이렇게 되면 아내 연금은 소멸된다. 노후에 대비하려고 수십년 고생하면서 힘들게 연금을 가꿔온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유족연금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가입자들의 지적에 대해, 정부는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낸 만큼 돌려받는 민간 연금보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설명에 수긍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국민연금이 공무원연금 등 다른 연금과 비교하면 조건이 크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국민연금의 취지는 생전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 제도”라면서 “부부가 둘 다 오래 살 가능성이 훨씬 높은 데도 유족연금이 중복 수령이 안 된다는 이유로 판단의 오류가 생겨선 곤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