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내 얘기네!”
지난 20일 조선닷컴에 ‘50세엔 老부모 간병 우울증… 56세엔 부부 관계 지옥으로’라는 기사가 나간 이후, 독자와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현재 간병을 하고 있는 독자들은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행복감이 확 떨어지고 배우자와 관계도 멀어졌다”고 하소연했고, 아직 간병 부담은 없지만 곧 내 일이 될까 두려운 독자들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니 일본의 사례가 남일 같지 않다, 관련 내용을 계속 알려 달라”고 했다.
“과거 50대는 자녀는 출가하고 부모는 돌아가신 상황이 많았지만, 지금 50대는 자녀는 아직 미혼 캥거루이고 부모는 살아계시는데 치매 아니면 다행인 상황이고... 여러 모로 힘든 50대입니다.”
간병 이슈는 아직 한국에선 시작 단계이지만,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선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다. 직간접적으로 간병에 얽힌 관계자들이 많다 보니 정치인들부터 눈치를 살핀다.
가정 간병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요양시설 입소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모셔와야 하는지 등 간병 상황이 닥쳐왔을 때 알아둬야 할 내용들을 담은 지침서들도 서점에 넘쳐난다. 부모 간병을 주제로 하는 소설책, 드라마, 영화도 쏟아진다. 유교적 관념에 사로 잡혀 무리하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면서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책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아직 우리는 실감을 하지 못하지만, 일본인들은 ‘인생 100세 시대’의 최대 리스크로 간병 비용을 꼽는다. 지난 7월 닛케이신문이 고령화 시대의 리스크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설문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1위에 ‘생각보다 무거운 간병비용’이 뽑혔다.
90세 이상 일본 고령자의 2명 중 1명은 간병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본의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간병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일종의 ‘위험 관리’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자금 준비를 해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간병이 시작되면 자산이 감소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며, 쇼핑 등도 직접 할 시간이 줄어서 절약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보니, 일본에는 ‘간병 푸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일본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이른바 노노(老老) 간병도 흔하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전체 간병의 60%가 바로 노노 간병이다. 집에서 돌보지 못해 요양 시설에 입소라도 하게 되면 비용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인지증이 심해져서 부모님이 시설에 입소하면 자택은 그냥 남게 되고, 가족은 간병 비용과 빈집 관리비용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한국에서도 노부모 간병비가 부담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지난 20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부모 간병비는 주로 자녀(69.4%)가 부담하고 있으며, 간병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자 비중도 전체의 81.5%로 높았다.
장기 간병은 부부의 사랑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일본에선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 해온 부부들의 황혼이혼이 계속 늘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노부모 간병은 황혼이혼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간병이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라이프 저널리스트인 오타 사에코(太田 差惠子)씨는 “친부모를 간병하는 것도 힘든데, 배우자의 부모님을 간병해야 하는 것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서 “배우자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간병 의무가 얹혀지면 부부 관계가 악화되면서 가정이 붕괴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인지증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50대 회사원인 A씨는 “어머니의 치매 발병 사실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어머니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없애준 것”이라며 “어머니 때문에 우리 가족까지 망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겐 이제 어머니는 남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돌보는 건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부모 간병에 대한 문제를 미리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부부 사이에 말 못할 갈등이 계속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집 근처에 어머니 거처를 마련하고, 각종 병원일과 행정일은 제가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지난 4년간 한 번도 어머니 집에 가지 않았어요. 아마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내와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이 다르다는 걸 (처음엔) 인정하기 힘들었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니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내 윤리와 도덕 관념에 따라 내가 내 부모를 챙겨야 가족 간에 틈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A씨는 이어 “가족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다른데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접근해서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나와 배우자, 자녀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족 관계를 정립하면 분란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명 작가 시노다 세츠코(65)씨는 인지증을 앓고 있는 96세 어머니를 20년 넘게 돌봐온 경험을 담아 여러 편의 소설책을 펴냈다.
시노다씨는 최근 중부경제신문에 “작년 코로나가 심했을 때, 요양시설에서 어머니 면회를 금지했는데 속으로는 ‘내 자유 시간이 생기겠네’하면서 만세를 불렀다”면서 “부모 간병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독인 만큼, 손을 들거나 목을 조를 것 같이 되기 전에 신뢰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50대라면 간병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나도, 나도’ 이렇게 된다고요. 자식이나 재산 자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야기할 게 많을 겁니다.”
요양시설에 아버지를 모신 50대 직장인인 B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B씨는 “처음에는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이런 생각만 들어서 괴롭고 암울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요양시설에 입소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위에 얘기하는 과정에서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