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내년도 예산은 총 607조원. 초수퍼 예산으로 역대 최대다. 가계 살림을 도맡고 있는 주부들은 다들 알겠지만, 한 번 커진 씀씀이는 다시 줄이기 어렵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하방 경직성 때문이다. 나라 살림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는 만큼, 아마도 내년 이맘때 또다시 ‘초수퍼 예산’ 뉴스를 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상상력을 크게 동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의 미리보기 무료판이라는 일본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일본 정부는 2022년도 예산안을 결정해 발표했다. 107조6000억엔(약 1116조원)으로, 10년 연속 사상 최대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내년도 예산을 자세히 뜯어보니, 의료나 간병, 연금 같은 사회보장 관련 비용이 눈에 띈다. 무려 36조2000억엔(약 375조4000억원)으로, 나라 전체 예산의 30%나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 때문에 들어가는 예산이 이렇게 많아지면, 국가가 필요한 곳에 돈을 투입할 여유가 없어진다. 닛케이신문은 25일 “정부가 사회보장 관련 제도를 바꿔서 고령화에 따른 자연 증감분을 어느 정도 억누르려고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비용 증가분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재무성(기획재정부)은 이른바 ‘약가 조정’과 ‘리필 처방’ 등을 통해 사회보장 관련 비용을 전체 예산의 30% 수준에서 관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리필처방은 재무성이 스스로 ‘골동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도입을 주장해 온 제도다. 쉽게 말하면 의사 처방전을 재사용하는 것으로, 전문 의약품이라도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약이라면 이미 사용한 처방전을 재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리필’ 제도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단순히 처방전만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불필요한 수요를 억제해 전체 의료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일본 재무성이 고령화 시대의 대비책 중 하나로 옛날부터 주장해 왔는데 의사협회 반발로 계속 무산되다가, 내년 봄에 드디어 현실화되는 셈이다.
일본 후생노동성(복지부)은 “약 처방을 받으려면 매번 의사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으로 통원하는 경우엔 똑같은 처방전을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경우에 ‘리필 처방’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후생노동성은 “환자 입장에서도 늘 복용해야 하는 상용약(常用薬)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면서 “특히 거동이 어려운 고령자는 병원에 가는 것조차도 힘든데 리필처방으로 이런 불편도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