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개미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 특정 종목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면 의무적으로 지분 공시를 해야 하고 자산 규모도 공개되기 때문이다.

2021년 증시 거래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파주 수퍼개미의 주식 처분 공시가 떴다. 40대 개인 투자자인 이모씨는 보유하고 있던 1430억원 어치 동진쎄미켐 주식(391만7431주) 중 336만7431주를 11~12월에 걸쳐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매도 평균 단가는 약 3만4000원. 파주 수퍼개미가 손에 쥔 현금은 약 1112억원에 달한다.

동진쎄미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재료 생산업체로, 삼성전자가 지분 4.8%를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다. 30일 기준 시가총액은 2조6221억원으로, 코스닥 17위. 마침 이날 장중 5만2100원까지 오르면서 상장 이후 역대 최고가를 찍었는데, 스웨덴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등 2차 전지 사업의 성장성이 밝다는 것이 호재였다.

최경진 한화투자증권 PB는 “작년에 동진쎄미켐이 스웨덴 배터리업체인 노스볼트와 10년 장기 계약을 했는데, 노스볼트가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다는 뉴스에 협력업체인 동진쎄미켐 주가가 급등했다”고 말했다.

회사 주가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날 나온 수퍼개미의 지분 처분 공시에 소액 주주들은 ‘역시 투자는 수퍼개미처럼...’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공시가 왕개미연구소 레이다에 잡힌 이유는, 공시 내용에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진쎄미켐 주가는 지난 20일 10% 상승 마감했고 21일엔 18% 뛰었고 30일에도 15% 치솟아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그런데 파주 수퍼개미는 동진쎄미켐 주가가 이렇게 급등하기 바로 직전에 평단 3만4000원 수준에서 지분을 대거 팔았고, 그의 매수 평균 단가(3만6492원)를 고려하면 재미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을 입었다.

재벌과 연예인, 수퍼개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만약 그가 매도 시점을 며칠만 늦춰 최고가 근처인 5만원선에서 팔았다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파주 수퍼개미가 동진쎄미켐 주식을 사서 지분 공시를 한 것은 지난 10월 1일이다. 당시 그는 391만7431주를 하루에 다 사들였는데, 투자금은 약 1430억원에 달한다. 그는 단번에 상장사 7.62%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로 떠올랐다.

그는 또 주식 취득 자금을 투자 이익으로 마련했다고 밝혀 수많은 일개미들의 부러움을 샀다. 여의도 증권맨 A씨는 “가상화폐(비트코인)로 큰 돈을 번 개인 투자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파주 수퍼개미가 동진쎄미켐을 대량 매수한 시기는 이 회사가 삼성전자 인수 추진이라는 ‘가짜 뉴스’로 상한가까지 올랐다가 뒤늦게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승분을 다 반납한 채 마감한 날이었다.

⇒관련 기사는 여기로(가짜 뉴스가 쏘아올린 불기둥 이 주식… 30% 치솟다 와르르, 조선닷컴에서만 실행됩니다)

지난 10월 1일 파주 수퍼개미는 1430억원 어치 주식을 사들이면서 동진쎄미켐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동진쎄미켐 관계자는 “이모씨는 오너 일가와 관련이 있는 특수 관계인도 아니며, 그가 어떤 이유에서 주식을 샀고 왜 다시 팔았는지 회사는 전혀 알 수 없다”면서 “투자자의 개인 정보 등에 대해서도 회사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주식 투자는 사고 파는 매매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왕개미연구소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 아무리 돈과 정보가 많은 수퍼개미라고 해도 최저점에 사서 최고점에 파는 식의 타이밍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연구소장은 보고서를 마무리짓는 이 시점까지 ‘왜 일찍 팔았을까’하면서 아쉽고 안타까운데, 대형 증권사 소속 객원 연구위원 T씨는 “수퍼개미가 단 며칠만 더 늦게 팔았더라면 큰 돈을 땄을 텐데 생각은 들겠지만, 수천억 현금을 가진 수퍼개미 걱정을 (우리 같은 일반인이) 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평했다.

최근 3개월 동안 동진쎄미켐 주가 추이. 10월 1일에 1430억원 어치 사서 11~12월 6차례에 걸쳐 대부분 팔았다. 주가는 지난 21일 18% 뛰고 30일엔 15% 치솟아 역대 최고가를 찍었는데, 수퍼개미는 상승 전에 대부분의 물량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