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신의 한수였다.”

50대 직장인 김 부장은 신입사원 시절에 가입했던 개인연금 통장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처음 회사에서 저축 금액 중 일부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회사 지원이 끊긴 다음에도 꼬박꼬박 돈을 넣었더니 어느새 잔액이 1억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회사 지원이 없어졌어도 노후에 대비해 꾸준히 20년 넘게 저축했더니 금액이 많이 쌓였다”면서 “나중에 은퇴해서 연금으로 받을 때 비과세이고, 아무리 고액 연금이라도 건강보험료 걱정까지 없다니, 중간에 깨지 않고 유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 사이에서 ‘꿀단지 연금통장’이 화제다. 지난 1994년 6월부터 2000년 12월까지만 판매된 구(舊) 개인연금 얘기다. 지금은 판매가 중단되어 새로 가입할 수 없는 희귀템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50대 직장인이나 공무원 중에 2000년 이전에 판매된 옛 개인연금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2001년 이후 출시된 현행 개인연금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어떤 액션을 취하기 전에 득실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 개인연금이 왜 꿀단지 상품인가. 현재 노후 대비용 연금저축은 세액공제(13.2~16.5%)이고 연금 수령금도 과세(3.3~5.5%)된다. 하지만 구 개인연금은 저축할 때는 소득공제(저축금액의 40%) 혜택을 받고, 나이 들어서 연금으로 인출할 때는 비과세 혜택을 챙길 수 있다.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중에 무엇이 유리한지는 개인별 소득에 따라 달라지니까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고소득자일수록 통상 소득공제가 유리). 하지만 연금 수령할 때 주는 비과세 혜택은 지금처럼 세금이 무거워지는 시기엔 엄청난 강점이다.

예컨대 개인연금에 가입해 노후에 연 1200만원 넘게 받으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에 잡힌다. 하지만 구 개인연금은 아무 걱정이 없다. 또 구 개인연금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비과세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료와 무관하다.

또 당시 구 개인연금은 보험사에서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그 때는 고금리 시절이었기 때문에 보험사 개인연금도 최저 연 4% 이상, 심지어 7% 확정 금리형도 많았다. 은행 예금 금리가 특판이라고 해도 2%대인 지금같은 저금리 시기엔 상상 하기 힘든 고금리 상품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상무는 “보험사에서 고금리 구 개인연금에 가입한 경우엔 납입기간(20년)이 끝나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여야 4당 대통령 후보들의 첫 TV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네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부동산·외교안보·일자리 정책 등을 두고 충돌했지만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동의한다”고 했다./뉴스1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 개인연금은 저축할 때도 좋지만 늙어서 연금으로 받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상품이다. 세제 혜택이 있는 연금 중에 유일한 비과세 상품이기 때문이다.

연금을 비과세로 타려면, 몇 가지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우선 가입자가 55세 이상이어야 하고, 가입 기간은 10년 이상이어야 한다. 또 최소 5년 이상 연금으로 수령하면 된다. 만약 이런 조건을 채우지 않고 중도 해지한다면 이자소득세(15.4%)를 내야 하고, 금액이 크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잡힐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보험사에서 고금리 개인연금으로 가입했다면 해지하기 전에 득실을 잘 따져봐야 한다. 혹 퇴직 후에 목돈이 필요해 해지한다면, 6개월 이내에 해야 세금 불이익이 없다.

지난 1994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 경제면 톱기사. '개인연금, 함정 피해가면 최고 금융상품, 내일부터 일제 시판'란 제목이 달려 있다. 기사는 "높은 수익률에다 소득공제등 여러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풍요로운 노후를 대비하려는 사람은 가입해둘 만하다."고 소개하고 있다./조선DB

그런데 은행에서 구 개인연금에 가입했고 수익률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영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씨티은행(옛 한미은행)의 구 개인연금 가입자라면 이런 고민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연금 이전 제도’를 활용해 적립금을 다른 금융회사로 이체하면 된다. 방법도 간단하다. 새로 연금 통장을 만들 회사에 방문하면 된다.

이때 구 개인연금은 새 회사의 구 개인연금으로만 옮겨야 한다. 수익률 욕심이 있다면 증권사의 구 개인연금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선인데, 단점은 상품 선택폭이 좁아서 딱 하나의 펀드만 고를 수 있다.

김동엽 상무는 “변동성을 낮추려면 특정 지역이나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보다는 여러 지역과 자산에 골고루 투자하는 자산배분형 상품(TDF 등)이 좋다”고 조언했다.

구 개인연금은 소득 공제만 받겠다고 하면 연 180만원까지 넣는 게 베스트이지만, 비과세라는 엄청난 장점이 있는 희귀템 연금 통장을 그렇게만 활용하긴 아쉽다. 분기당 300만원, 연 1200만원까지 넣을 수 있으니까, 비과세 혜택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한도를 꽉꽉 채우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