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 2020년 공적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를 75세 이후로 늦추되, 연금은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금 개혁 법안을 의결했다. 일하는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해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연금 수령 시기를 75세까지 늦출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연금대개정' 관련 특집으로 나온 잡지(다이아몬드) 표지./다이아몬드

“연금 고갈이 걱정되는데 정말로 75세부터 연금을 받아도 괜찮을까요?”

요즘 일본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선 ‘연금 손익분기점’ 계산이 유행이다. 오는 4월부터 일본 정부가 기존 연금 제도를 대폭 손질해 새 제도를 시행하는데, 제도 변경 이후 언제부터 연금을 타기 시작해야 이득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일본 서점가에는 이른바 ‘연금대개정(年金大改正)’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도입한 새 연금 제도는 종전 70세까지였던 연금 수령 나이를 최대 75세까지 늘린 것이 핵심이다. 원래 일본의 공적연금 수령 나이는 한국처럼 65세다. 하지만 연금을 65세 이후로 늦게 받으면 그만큼 연금액을 더 많이 준다. 한 달에 0.7%씩 늘어난다. 만약 연금을 70세부터 받는다고 하면 총 수급액은 42% 늘어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4월부터 연금 수령 나이를 75세까지 늘리기로 했다. 연금액은 최대 84%까지 늘어난다.

오는 4월부터 업무 효율화 일환에서 폐지되는 종이로 된 일본의 연금수첩. 오렌지색은 1976년생 이전 세대가 갖고 있고, 청색은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조선DB

이도 미에(井戸美枝) 사회보험노무사 분석에 따르면, 만약 일본에서 75세부터 연금을 타기 시작하면 65세에 연금을 수령할 때보다 84% 더 많은 금액을 받게 되며, 예상 손익분기점은 86세다. 즉 75세부터 연금을 받는 경우 86세보다 더 오래 살면 이득이지만, 그 전에 사망하게 되면 손해다.

이도 미에씨는 “2020년 기준 일본인 평균 수명은 여성 87.7세, 남성 81.6세인데, 의료기술 발달에 따라 수명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성은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춰서 선택하는 편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이 한국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고 본다면, 일본의 ‘연금 75세 플랜’ 도입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현재 대선 후보들이 모두 연금 개혁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일본의 연금 변화를 참고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최근 국내에서도 기금 고갈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고령화로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기에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돈을 최대한 늦게 나가게 해야 유리하다”면서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도 일본처럼 연금 수령 나이를 더 늦추는 방법을 고려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일본과 비슷한 연기연금 제도가 있다. 연금 수급 나이가 됐지만 일을 하고 있어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있다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당장은 연금을 받지 않고 나중에 연금액을 더 늘려서 받으려는 고령자들이 대상이다.

노령연금 수급자가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최대 5년 동안 연금액 전부 또는 일부(50~90%)에 대해 지급 연기를 신청할 수 있다. 1년에 7.2%(월 0.6%), 최대 36% 더 많은 연금액을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받을 수 있다.

구분76세 누적 연금액83세 누적손익분기점
60세 개시(조기연금)1억1900만원1억6800만원76세 이후
65세 개시(노령연금)1억2000만원1억9000만원-
70세 개시(연기연금)9520만원1억9040만원83세 이후

그런데 70세로 늦춰서 연금을 받는다면 무조건 이득일까?

인생 100세 시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금을 최대한 늦게 받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연금을 늦게 받겠다고 미뤘다가 일찍 사망한다면 ‘미리 당겨서 받아둘 걸’ 하고 후회할 수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65세에 노령연금을 연 1000만원씩 받을 사람이 70세에 연기연금을 받는 경우와의 득실을 비교해 봤다. 물가 상승률은 고려하지 않고 일정하다고 가정했다.

그 결과, 70세 연기연금을 선택하는 경우의 손익분기점은 83세였다. 즉 70세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82세까지는 노령연금에 비해 연금 누적액이 작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그 때부터 금액 추월이 일어났다. 100세 시점에는 70세부터 연금을 타는 경우의 누적 수령액이 4억2160만원으로, 65세 개시 시점보다 총액이 6160만원이나 더 많았다.

일본 노후문제 전문가 요코테 쇼타 씨는 “연기연금은 펀드나 주식보다 훨씬 확실하게 돈을 모으는 재테크 방법”이라며 “65세부터 해야 할 연금 수령 시기를 3년 정도 미루기만 해도 일본 기준 20%가 넘는 연금액 상승이 계속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장수(長壽)가 집안 내력이지만 예·적금이 많지 않다거나 혹은 아이가 아직 독립하지 못하는 등 노후 불안 요소가 있다면 70세까지 일할 플랜을 세우는 동시에 연금 수급 나이를 뒤로 늦추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연금 수령 시기별 손익분기점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 A씨는 “연금 수령 시기의 유불리는 수명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사람의 수명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노후 생활비가 부족하면 조기연금, 노후 생활비가 여유 있으면 연기연금 등으로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