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팔자(八字)’는 사람의 한평생 운수를 나타낸다. 출생한 연·월·일·시에 따라 팔자가 좋고 나쁨이 달라진다. 태어남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팔자’는 정해진 것이고 운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지금껏 ‘팔자’대로 살았다면, 남은 시간 ‘팔자’는 한번 고쳐보자.

첫째, 입자. 깨끗하게 옷 잘 입는 것도 경쟁력이다. 이왕이면 매력적인 50대가 되자. 돈 주고 컨설팅을 받을 필요까진 없다. 유튜브에서 멋진 중년들이 옷 잘 입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누구나 ‘드레스업(dress up·옷을 잘 입는)’ 중년이 될 수 있다. 시니어 모델로 도전해도 좋다. 개성 있는 옷차림도 중요하지만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같은 자유로움이 좋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두 번째 청춘’을 위해 내 속에 잠든 나를 깨워보자.

둘째, 배우자. 필자 아내는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았다.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내 안에 내가 없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최근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양성 과정’을 수료하고, 뜻있는 지인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정부 지원도 받았다.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 아내는 신이 났다.

셋째, 만들자. 50대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자연인’이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자를 대하는 방식은 ‘사회적 지위’와 ‘돈’ 같은 경제적 기준이다. 사회에서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한 남성들이 이제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연’이라는 동굴로 숨어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스필라움’을 만들자. 스필라움이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을 뜻하는 말로, 독일어 ‘놀이’(슈필·spiel)와 ‘공간’(라움·raum)을 합쳐 만든 말이다.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쉬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종일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이면 된다.

넷째, 걷자. 생수 900원, 커피 4100원, 점심 8000원. 내 몸을 지켜주는 건강 비용이다. 주말에는 걷자. 생수 병 들고 발길 닫는 대로 걸어보자. 걷다 힘들면 쉬다가 걷자.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예방할 수 있다. 지구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피조물이 이토록 걷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반백 년 살았으니 이곳 저곳 삐걱거린다. 기름 치고 고쳐 쓰자. 남은 생은 틈나는 대로 걷자. 밑져야 본전이다.

다섯째, 속지 말자. ‘50대 후반 기혼자, 자신의 판단과 금융 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 성격의 소유자, 최근에 건강 또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뭘까? 금융 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미국투자자보호재단에서 정의한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아는 사람인데 잘해주겠지. 전문가니까 잘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은퇴하면 어떻게 되겠지” “설마 내가 큰 병 걸리지 않겠지” 이렇게 무디게 살아가는 50대가 적지 않다.

여섯째, (잘)쓰자.쓰죽회’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생선회’ 이름 같지만 전혀 아니다. 남은 인생 아끼지 말고 다 ‘쓰’고 ‘죽’자는 의미의 모임이다. 어쩌면 자식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법도 하지만, 은퇴 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당당하게 ‘두 번째 청춘’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돈 버는 데 익숙한 우리는 돈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 재산을 모으고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좀 벗어나자. 모은 재산을 가족은 물론 내 삶의 부피와 질을 확장하는 데 쓰자. 자녀들한테 가장 필요할 땐 도움은 주자. 다 쓰고 죽는 것이 아니라, 잘 쓰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이다.

일곱째, 타자. ‘연금 타자’. 우스갯소리일지 몰라도 요즘 복지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와 여자는 ‘부동산 부자’가 아니라, 연금 타는 남(여)자다. 연금이 좋은 이유는 정해진 날짜, 연금액이 빠짐없이 죽을 때까지 나온다는 점이다. “나는 연금 하나 없는데 어떡하나?” 고민이라면 연금이 진짜 연금일 필요는 없다. 국가가 주는 연금에 매달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도 연금이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정해진 날, 빠지지 않고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이건 자식 연금, 용돈 연금이라 불러도 좋다. 기왕이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자식들 형편이야 부모가 더 잘 알지 않는가.

여덟째, 하자. 100세 시대에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하자’. 지금껏 밥벌이 위해 필사적으로 살았다. 제발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 말자. 이미 곤죽이 되도록 살았다. 이제 ‘되면 하자’고 말하자. 조금 구불구불하게 동화처럼 살아도 된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