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안 그래도 인플레이션 바람을 타고 급등하던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부채질하는 모양새가 됐다. 22일(현지 시각) 브렌트유가 장중 배럴당 99.50달러까지 치솟아 2014년 9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뒀고,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는 동북아 천연가스현물가격(JKM)은 9% 뛰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원유 생산국이고,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 지대로 밀과 옥수수 등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주변국과 분쟁을 일으키며 국제 원자재 시장을 자극했다. 2008년 8월 그루지야(조지아) 침공과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이 대표적 사례다. 다만 당시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 국면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팬데믹 후유증으로 자산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라는 차이가 있다.
2008년 8월 초 러시아가 그루지야 남부 오세티야 지역을 침공했을 때 국제 유가는 잠깐 상승했다가 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침공 직전 배럴당 140달러대까지 치솟았지만 연말에는 30달러대까지 수직 낙하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하락의 기폭제가 됐다. 곡물 가격의 경우 침공을 기점으로 소맥이 10% 이상 뛰었지만, 오름세가 며칠 가지는 않았다.
2014년 2월 말 크림반도 사태 때는 침공 직전에 천연가스 가격이 40% 이상 폭등하며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침공 직후 빠르게 꺾여 안정을 되찾았다. 다만 곡물 가격은 침공 이후 2개월간 강세가 이어졌다. 소맥은 20%, 옥수수는 10%가량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발(發)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과거와는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4월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가 최근 90달러를 돌파하는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유례없이 가파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전면전 발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WTI(서부텍사스산원유)가 13.4% 급등해 100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했고,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고 125달러 수준까지도 예상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두 번의 사례는 단기간에 끝난 만큼 원자재 가격이 단기 반등에 그쳤지만, 이번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 결과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