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냐 떼죠. 물에 빠진 사람을 뼈만 남겨 버립니다.”(증권업계 관계자)
인플레와 전쟁이라는 겹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다 판 후에,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낮은 가격에 다시 사들이고 상환해서 시세 차익을 얻는 투자법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코스피 공매도 잔고는 10조8578억원에 달했다. 이는 작년 5월 3일 일부 종목에 대한 공매도 재개 이후 최대치다. 당시만 해도 코스피 공매도 잔고는 4조8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늘어나더니 작년 말 10조원을 뚫었다.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되어 ‘공매도 과열 종목’ 리스트에 오르는 상장사들은 마치 피라냐 떼의 공격이라도 받는 것처럼 주가가 만신창이가 된다. 공매도 과열 종목이란, 직전 40거래일 평균 대비 공매도 비중이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일정 조건이 되면 하루 공매도가 정지되는 종목을 말한다. 증시 거래대금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공매도 세력의 일방적 공격을 받으면, 주가는 폭포수처럼 무섭게 흘러 내린다.
최근 코스피에서 공매도 과열 종목에 지정된 회사는 삼성화재였다. 요즘 같은 약세장에서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되면 주가가 어떻게 변하는지, 삼성화재 사례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 21일 삼성화재는 작년 실적과 배당금을 발표했고 이후 공매도 세력이 좋아하는 ‘목표주가 하향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총 10개 증권사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 중 5개 증권사(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NH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이베스트증권)가 목표 주가를 최대 14.3%까지 낮췄다.
삼성화재의 작년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쳤고, 배당 정책도 합리적이지 않으며 일관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보통주 기준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 비율)을 43.7%로 결정했다. 이는 2019년 55.6%, 2020년 45.7%보다 낮아진 것이다.
그러자 공매도 세력이 마치 다 함께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22일 삼성화재 공매도 거래대금은 175억원에 달했다. 이 수치는 한국거래소가 자료를 취합하기 시작한 지난 2000년 이후 역대 최대 공매도 기록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9월의 자체 공매도 신기록(149억원)까지 깨버렸다.
결국 이날 삼성화재는 전날보다 6.4% 하락한 19만7500원에 마감했다. 기관이 293억원 넘게 순매도했고 외국인도 매도에 가담했다. 23일에도 주가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19만6500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배당성향 44%도 절대적으로 보면 낮은 건 아니지만 회사가 이랬다 저랬다 언급한 점이 부정적으로 부각되면서 신뢰의 문제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평했다.
한편 삼성화재 외에 올해 코스피에서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된 회사들은 KCC, LS일렉트릭, PI첨단소재, HDC현대산업개발, 대웅제약, OCI 등이 있다. KCC는 지난해 실적이 증권가 예상치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짓눌렀고, LS일렉트릭 역시 물적분할 이슈로 주가가 내릴 것이라고 예상한 공매도 세력이 몰려 들어 주가를 끌어 내렸다.
그로스파인더 운영자인 장현호씨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내년에 금융투자소득세 제도가 시행되면 한국 시장 매력도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공매도 전면재개 이슈 또한 앞으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 이벤트와 맞물리면서 나오게 될 텐데, 그러면 시장이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