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점이라고 판단하고 투자했는데 10% 넘게 떨어졌네요. ‘티큐’ 때문에 계좌가 완전 녹아내리고 있지만(크게 손해를 본다는 뜻) 좀만 버텨봅시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3배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한 서학 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요즘 온라인 주주 게시판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티큐’는 올 들어 서학 개미가 해외 주식과 ETF를 합쳐 가장 많이 순매수한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라는 ETF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 ETF는 나스닥 시장을 대표하는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 100 지수가 상승할 경우 상승률의 3배만큼 수익이 나지만, 반대로 하락할 경우 손실률도 3배가 되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이다.
서학 개미는 이 ETF를 8억5560만달러(약 1조300억원) 순매수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8억2350만달러 순매수)보다 더 많이 사들인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이 ETF를 보유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어나고 있다.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3일까지 서학 개미들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3배 레버리지 ETF·ETN(상장지수증권)을 17억6040만달러(약 2조1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올해 개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상장 ETF(1조7730억원)·ETN(50억원) 순매수액보다 훨씬 큰 규모다.
◇3배짜리 베팅한 서학 개미
서학 개미의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순매수 규모는 같은 기간 국내 주식 종목별 순매수 금액과 비교해도 삼성전자(1조4920억원 순매수), 카카오(1조3610억원), 네이버(1조1670억원)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익률 3배를 노린 서학 개미들의 베팅은 ‘티큐’ 한 종목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반도체 기업으로 구성된 지수 상승률의 3배만큼 수익이 나는 ‘디렉시언 데일리 세미컨덕터스 불 3X ETF’ 순매수액도 4억5110만달러에 달한다. 서학 개미들은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중심으로 구성된 지수 상승률의 3배만큼 수익이 나는 ETN인 ‘BMO 마이크로섹터스 FANG 이노베이션 3X 레버리지드’도 1억5280만달러 순매수했다.
올 들어 금리가 상승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 조치를 예고하면서 뉴욕 증시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나스닥100 지수는 올 들어 17.2% 하락했다. 코로나 사태로 증시가 한 차례 급락했다 회복한 이후로는 상승세를 이어가던 지수가 크게 하락하자 투자자들은 이를 저점 투자 기회라고 여기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추가 악재가 생기면서 나스닥100 지수는 추가 하락하고 있다.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는 올 들어 가격이 45.7% 하락했다. 올 들어 서학 개미들이 많이 순매수한 다른 3배 레버리지 ETF도 대부분 기술주 주가에 연동된 상품들이라 대체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 “지수 방향성은 예측 불가”
금융 투자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ETF·ETN은 수익률이 하루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특정 기간에 지수가 올라도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라며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원지수가 1000에서 20% 떨어져 800이 됐다가 다시 25% 올라 1000이 될 경우 원지수 수익률은 제로(0)가 되지만, 3배짜리 레버리지 상품 가격은 1000에서 -60%인 400으로 떨어졌다가 75% 올라도 70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지수가 하루 단위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경우 결과적으로 지수가 오르더라도 기대했던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위험한 상품에 투자 자금의 대부분을 ‘몰빵’하는 것은 건전한 투자로 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3배 레버리지 ETF 투자 등 고위험 투자는 ‘전체 투자 자금의 20% 미만’ 등으로 기준을 정해서 해야 한다”며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추이나 연준의 움직임에 따라 지수가 추가 하락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고위험 상품에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투기에 가까운 위험한 행동”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