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대선이 빅 이슈였죠. 하지만 올해는 그걸 뛰어넘는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대선이 끝나든, 안 끝나든 증시에는 별 상관이 없는 국면입니다.”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새 정부 출범 기대감에 주가가 오르는 이른바 ‘허니문 랠리’가 나타날 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이후에는 정치 불확실성 해소로 주가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글로벌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진환 파인만자산운용 대표는 9일 본지 인터뷰에서 “환율과 금리, 물가 등 3가지가 모두 오르는 이른바 3고(高) 시대는 증시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라며 “올 오아 낫씽(모 아니면 도) 으로 풀베팅한 투자자들은 견디기가 매우 어려운 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30년 넘게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해온 증권가 고수 중 한 명이다. 한국투자증권을 거쳐 작년 6월 파인만자산운용 대표 자리에 올랐다. 조선일보 경제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재테크 박람회’의 무대에 두 차례나 섰던 명강연자다.
그는 “30년 증권가에서 일했지만 요즘 같은 극악의 변동성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 “경제가 소프트랜딩을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돈줄 조이기에 들어갔는데 국내외적으로 돌발 변수들이 너무 많이 발생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산불이 났는데 조기 진화하지 못해 확산 일로에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비해 시장 변동성이 굉장히 커졌는데, 점점 증폭되고 있죠. 결정타는 전쟁이고요. 역사적으로 동유럽에서 전쟁이 나면 세계 대전으로 커졌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겁니다.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 양산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공포죠.”
수출 위주 국가인 한국은 세계 경제가 풍요롭고 교역이 잘 되어야 유리한데, 지금처럼 교역길이 끊기고 막히게 되면 경제에는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유럽은 식민지 섬 하나 팔면 된다고 하고 러시아는 자원이 많다면서 자신하고 일본은 기축 통화국이니까 버틸 수 있다는데, 뒷배가 없는 한국은 사실상 매일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라며 “지금은 수출 위주 국가인 한국에 불리한 변수들이 많아 증시에 비우호적”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악재란 악재는 모조리 반영하는 곳이 ‘K증시’라는 자조적인 표현처럼, 앞으로 악재가 터질 때마다 증시 변동성은 더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다.
대선 이후 증시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그는 “대선은 새로운 출발이라고 하지만, 주요 후보들의 공약이 돈풀기와 관계가 많아서 향후 채권 금리가 크게 오를 수 있다(채권 가격 급락)는 걱정이 시장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나라 살림은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마련해 써야 하지만, 돈을 더 많이 쓰기 위해 국가가 채권을 찍어내면 부작용과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이 대량 발행되면 물량이 많아지니 채권 금리는 뛰게 된다(채권값 급락). 시중 금리가 오르면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소상공인 등 대출자들의 부담은 커진다.
박 대표는 “올해는 소소한 악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지속될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이 마음 편히 투자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안전마진이 확보된 도피성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점에서 매수해 돈을 벌겠다는 스마트머니가 나서기에는 아직 추운 겨울입니다. 최근 개인들이 하루에 2조 넘게 주식을 샀다고 하지만 단타성 자금이 60% 이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락장이라고 해도 ‘데드캣 바운스(일시적 반등)’처럼 잠시 오를 수 있다면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불나방들의 트레이딩일뿐, 스마트머니가 움직이는 시그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시장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거래가 죽어가면서 하루하루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팔(사고 팔고) 자금만 부산을 떨고 있다는 평가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월 일 평균 거래대금은 코스피 기준 18조6619억원으로, 최근 1년 중 최저치였다.
박 대표는 “투자를 해서 수익을 한 번 보면 자기 과신 편향이 생겨서 앞으로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하기 쉽다”면서 “요즘 같은 험난한 시기에는 레버리지성 도박 투자는 피해야 하며, 시장에서 한 발 빼고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의 3고 시대에는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박 대표는 투자자들이 알아둬야 할 키워드로 R·I·B를 제시했다. RIB는 배당 수익률이 연 4~6% 정도 나오는 리츠(REITs)와 경쟁그룹 대비 20~30% 할인되어서 공모가격이 결정되는 공모주(IPO), 그리고 연 2~3% 이자가 나오는 은행 예금(Bank)를 의미한다. 버는 것보다는 지키는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박 대표는 “스마트머니 성격의 투자자라면 ‘나의 성장=기업의 성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성장하는 우량주에 분할 투자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만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