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버블?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국장보다 훨씬 안전해요.” “대폭락? 오면 더 좋죠. 돈 생기는 대로 무조건 사모을 겁니다.” “급한 돈 아닌데 왜 파나요? 지금 사서 2년만 기다리면 1억이 최소 3억은 될 텐데요.”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티큐(TQQQ)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젊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티큐에 대거 쏠리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티큐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되어 거래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티큐는 UltraPro QQQ ETF의 티커(거래코드)명이다. 미국 운용사인 프로셰어즈(ProShares)가 운용한다. 애플, 아마존, 테슬라 등이 포함돼 있는 나스닥 100지수 움직임을 3배로 추종한다. 한국 증시에선 볼 수 없는 공격적인 상품으로, 나스닥 100지수가 오르면 오른 수익률의 3배, 내릴 때도 3배로 화끈하게 움직인다. 작년 상승장에서 83%의 성과를 올렸다.
티큐는 올해 서학개미 순매수 종목 1위라는 ‘사건’을 일으켰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기업도 아닌데, 전체 해외주식 중 1위에 오른 것이다.
1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들은 올 들어 티큐를 11억9382만달러(약 1조4800억원) 어치 순매수해서 한국인 최애 종목이었던 테슬라(11억5435만달러)보다 더 많이 샀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인들은 올해 한국 증시에선 삼성전자(4조), 네이버(1조1900억), 카카오(1조1800억) 순으로 주식을 많이 사모았는데, 티큐 순매수 금액은 네이버보다 많다.
이달 기준 한국인들이 보유 중인 티큐 자산은 15억6153만달러(약 2조원)로, 티큐 전체 운용 규모(약 17조원)의 12%에 육박한다. 프로셰어즈 CEO가 한국 투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따로 보내야 할 판이다.
마치 종교 같은 신드롬처럼, 티큐가 한국 젊은층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왜일까. 바로 아래 주가 그래프 때문이다. 우뚝 솟은 거대한 산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2년 전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8달러선까지 떨어졌던 티큐는 작년 말에 91달러선까지 올랐다. 수익률로 따지면 1000%다.
2030 투자자들은 “종잣돈이 부족해 부자되기가 어려운 2030에게 티큐는 그야말로 구세주”라며 “아무리 아파트 상승률이 높다고 해도, 티큐처럼 2년 동안에 1000%씩 오르는 아파트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최창규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한국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특히 나스닥 기술주에 대해서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며 “나스닥 지수가 오랜 기간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기에 그에 연동하는 티큐를 장기 보유하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전쟁 악재가 터져 주가가 하락해도 티큐로 향하는 자금 행진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가속도가 붙고 있다. 끝없이 오르는 산에 잠시 골짜기가 생겼는데, 이런 주가 하락기를 저가 매수 타이밍으로 본다. 최 본부장은 “티큐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의 주가를 모아 만든 것인 만큼,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해서 장이 불안해질 때 오히려 안전지대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티큐 사랑은 서울대 공대 출신의 현직 의사인 라오어씨가 지난해 ‘미국 주식 무한매수법’이란 책을 내면서 불이 붙었다. 그가 말하는 무한매수법은 변동성이 큰 티큐를 분할 매수하고, 분할 매도하면서 연평균 20~30% 수익을 얻는 투자법이다.
그는 작년 말 언론 인터뷰에서 “평범한 투자법으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면서 “1년에 수억씩 상승하는 집값을 볼 때면 상실감을 느끼지만 티큐에 투자하면 그런 소외감, 박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오어씨의 무한매수법은 거액을 한꺼번에 왕창 투자하는 게 아니라, 작은 금액으로 쪼개서 분할 매수해 나간다. 다르게 말하면 무한 물타기쯤 되겠다. 시장이 조정을 받으면 추가로 더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현금 유동성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최성락 SR경제연구소장은 “무한매수법은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수익을 내왔는데 주가가 떨어지면 계속 사야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티큐를 매수한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 추가 매수해 평단가를 낮추는데, 지금 폭락했다고 해도 나스닥지수가 10% 오르면 티큐는 30% 오르기 때문에 장기 보유시 복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장기로 투자하겠다며 매수해도 당장 파랗게 물든 계좌를 보면 가슴이 쓰리다. 작년까진 승승장구했던 티큐는 올해는 무섭게 빠져 반토막이 나 있는 상태다. “1억원이 5000만원이 됐다”는 티큐 투자자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튜브에는 티큐 투자자들의 멘탈 관리를 위한 ‘나스닥 불패’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30대 투자자 이모씨는 “남편에게는 1000만원쯤 손실이라고 얘기했는데 지난주 계좌를 열어보니 마이너스 2000만원이었다”면서 “추가 매수해서 평단가를 낮춰나가야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고 고민하다보니 삶의 질도 나빠지는 것 같아 매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과 한국 증시 모두 올해 제법 큰 조정을 받으면서 손실 중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면서 “얼른 손실을 만회해서 본전을 찾고 싶은 마음에 티큐 같은 3배 레버리지 상품 매수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3배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해 마음 고생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안전하게 투자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는 티큐에 대해 그야말로 운이 좋은 상품이라고 말한다. 홍 박사는 “지난 2000년 3월 나스닥 지수는 4440선이었지만 버블 붕괴로 2년 후에는 900선까지 빠졌다”면서 “만약 닷컴버블 당시에 티큐가 출시되었다면 아마 상장폐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레버리지 상품은 자산시장이 평화로울 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평화가 깨지게 되면 문제가 생기고, 그 시점을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1999년이나 2008년과 같은 위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강한 확신이 없다면 매매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대한민국 2030을 휩쓸고 있는 티큐 신드롬은 신기하게도 대한민국만의 현상이다. 가령 노무라 등 일본 초대형 증권사들은 티큐가 하이리스크 상품이라는 이유로 개인 거래는 막아두고 있다. 일본 금융청이 고위험 상품 판매를 깐깐하게 보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형 증권사들에서만 티큐 매매가 가능한데 매수 단위를 높여서 우리처럼 쉽게 거래하지 못한다. 일본 뉴스 검색 사이트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티큐 관련 내용이 없었는데, 개인 매매가 불편한 것이 이유였다.
반면 한국의 대형 증권사들은 티큐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스닥지수의 5배로 움직이는 오큐(5QQQ, 나스닥지수의 5배 추종)까지 내놓아 대조를 이룬다(오큐 거래 수수료는 최소 4만원).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월 6일 오큐 상품 거래를 개시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부터 지난 14일(현지시각)까지 오큐 하락률이 70%에 달한다. 이밖에 NH투자증권 등이 오큐 거래를 열어 두었고, 삼성증권은 개인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거래를 막았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탐욕과 리스크 편향이 경제 발전에 있어서 필요는 하지만, 과도하게 되면 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매사가 그저 상품을 떼어다가 수익 내는 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닌지, 상품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에게 자세히 내용은 알리고 파는 것인지, 한국 금융감독원도 자세히 살펴봐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