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몇 백씩 손해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양념치킨에 3000원짜리 소떡 추가는 (아까워서) 못했어요.” “집에서 한 달에 생수 12병씩 마셨는데, 오늘부터는 배달 끊고 직접 물 끓여 보리차로 마시려고요.” “도대체 누가 주식을 반토막날 때까지 그냥 두나 했는데, 그걸 제 계좌에서 봤네요.”
지난 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좌가 녹고 있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비명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양시장에서 15조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8조8000억원 어치 주식을 팔아 치웠고,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도 6조5000억원 어치 한국 주식을 내다 팔았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들이 가장 많이 산 주식은 삼성전자(우선주 포함 4조5000억원)였고, 그 다음으로 네이버(1조2000억원), 카카오(1조1700억원), 현대차(1조1100억원), 삼성SDI(9500억원) 순이었다. 하지만 이들 5개 종목은 연초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해 투자자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한국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15일 전날보다 1% 하락한 6만9500원에 마감하면서 7만원선이 무너졌다. 인터넷 주식 커뮤니티에는 “코로나 때부터 묵혀뒀던 우량주 수익이 2000만원이 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욕심 내지 말고 팔았어야 하는데 너무 후회된다”거나 “정말 어어어 하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50%가 됐다, 다들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하는데 너무 속상하다”는 초보 개미들의 하소연이 넘쳐난다.
하지만 주식을 10년 이상 해 봤던 투자자들은 이런 변동장에도 오히려 태연하다. 누구나 꼭 거친다는 사춘기처럼, 주식 투자를 하다보면 반토막 주식의 아픔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쟁과 인플레 등이 일으키는 극심한 변동장에서 월가 투자의 전설들도 반토막 주식으로 적잖은 손실을 입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다.
멍거는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의 오른팔로 불린다. 미국 경제 잡지인 포브스에 따르면, 멍거의 재산은 25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한다. 98세의 가치 투자자인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자본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는 작년 초부터 중국 주식이 싸고 전망도 밝다면서 분할 매수를 시작했다. 멍거는 당시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멍거가 회장으로 있는 데일리저널은 작년 말 기준으로 중국의 거대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주식을 60만2060주 보유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매 분기마다 꾸준히 매수해 가면서 주식 수를 늘렸다.
그런데 2020년 말만 해도 주당 320달러까지 치솟았던 알리바바 주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기준 76.8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정부가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중국 회사들에 대한 회계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유다. 중국 상장사들의 주가는 고점 대비 최대 90% 폭락했고, 알리바바는 최고점 대비 4분의1 토막이 났다.
그렇다면 멍거 부회장은 4분의1 토막이 난 알리바바 주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멍거 부회장은 반토막 주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이 고점 대비 50% 떨어진 경험을 이미 3번이나 했지만 단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다”면서 “장기 투자자가 반토막 주식을 경험하는 것은 시장에서 겪는 정상적인 우여곡절(normal vicissitudes)이며, 투자 경험을 쌓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100년에 두세번은 찾아오는 반토막 급락장을 평정심(equanimity)을 갖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당신은 주식 투자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시장 변동성에 철학적으로 대응하는 기질이 있는 사람에 비해 성과도 신통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찰리 멍거 부회장의 BBC 인터뷰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조선닷컴에서만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