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횡령 공화국인가요?” “요즘 횡령하는 게 트렌드입니까?”
올초 오스템임플란트의 2000억원대 횡령 사건 이후, 국내 증시에서 횡령 사건들이 매달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3일 LG유플러스 소액 주주들은 갑작스러운 횡령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LG유플러스의 팀장급 영업직원이 회삿돈을 최대 80억원 빼돌리고 잠적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해당 영업맨은 대리점과 허위 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안팎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담당한 계약 금액이 최대 80억 원에 달한다는 말도 나왔다. 회사 측은 정상 계약과 비정상 계약을 가려내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며, 조사를 마친 후 이 직원을 경찰에 고소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날 화장품 업체인 클리오도 사업보고서에서 직원 횡령으로 2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해당 직원이 특정 업체에 물품 대금을 개인 계좌로 수령하겠다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일부 금액만 법인 계좌로 송금하는 형태로 횡령했다”고 설명했다.
클리오는 올해 1월 횡령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직원을 해고했으며, 지난 2월 성동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해 사건 수사를 의뢰했다. 횡령은 내부 관리 취약점이 발견됐다는 의미이므로 주가에는 악재다.
24일 오후 증시에서 클리오 주가는 전날보다 8% 가까이 하락한 1만98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1만8950원까지도 떨어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횡령으로 인한 거래 정지는 횡령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데, 클리오는 2020년 감사보고서 기준 자산이 2200억원으로 횡령 금액(22억원)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지난 달 15일엔 코스피 상장사인 계양전기에서 246억원의 횡령 공시가 나왔다. 계양전기는 공시일부터 지금까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계양전기 재무팀 대리로 지난 2016년부터 6년간 근무한 김모씨는 회사 자금 246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계양전기 자기자본(1926억원)의 12.7%에 해당하는 규모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씨는 횡령금 대부분을 해외 가상화폐거래소의 선물옵션 투자, 해외 도박사이트, 주식투자, 유흥비, 게임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횡령금 중 37억원만 계양전기에 자진 반납했다.
한편 지난 달 코스닥 상장사인 휴센텍도 횡령·배임 관련 루머가 돌면서 거래가 정지됐다. 휴센텍은 대표이사·사내이사·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 9인이 259억1000만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상장사는 아니지만,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 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공무원 사건도 있었다. 지난 달 서울 동부지검은 횡령과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강동구청 소속 7급 공무원 김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공문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SH가 강동구청에 입금한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 분담금 1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횡령금은 주식에 투자했고, 약 69억원의 자금은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유독 횡령 사건이 많아진 것은 개인의 잘못이 크긴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도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견물생심 심리가 크게 악화됐다”면서 “횡령은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큰 악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퀵시황’ 진행자인 최경진 한화투자증권 PB는 “소득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풍조도 한몫하고 있다”면서 “횡령은 거래중지,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되는데,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서 연초부터 횡령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횡령은 상장폐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는 중대 변수”라며 “투자자들은 내가 투자한 회사는 괜찮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