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여의도 유통 애널리스트들의 시선이 한 온라인 유통업체의 감사보고서에 집중됐다. 바로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가 공시한 감사보고서다.

컬리는 올해 국내 이커머스 1호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상태로, 조만간 등판할 새내기 기업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컬리 매출은 1조5614억원, 영업손실은 2177억원, 당기순손실은 1조2903억원이었다. 영업손실은 2020년 1163억원에서 지난해 2177억원으로 87% 증가했다.

컬리는 영업손실 증가에 대해 “지속 성장을 위해 물류센터 등 인프라 시설에 과감히 선투자했고, 샛별배송 가능 지역도 크게 확대했다”고 말했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64% 증가한 1조5614억원을 기록했다고 31일 밝혔다. 영업적자는 2177억원으로 전년 1163억원보다 크게 늘어났다./그래픽=이민경 조선디자인랩 기자

지난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컬리는 매출 1조원을 넘긴 공룡이 됐지만 아직까지 흑자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누적 적자가 5000억원에 육박하는 만년 적자 기업으로, 코스피 상장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거래소가 상장 규정을 대폭 완화하면서 증시 데뷔의 길이 열렸다. 이른바 ‘K유니콘 특례 상장’이다. 작년 3월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의 기업공개(IPO)를 활성화하기 위해 코스닥에서만 허용하던 시가총액 단독 상장 요건을 코스피에도 도입한다”고 밝혔다. 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은 성장성만 있다면 적자라도 상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데뷔한 작년 3월 11일,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미국 상장을 위한 계획을 금융인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한국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진은 WSJ와의 인터뷰 기사.

새로 생긴 ‘K유니콘 특례’ 덕분에 컬리는 지난달 28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예비심사에는 기본적으로 45영업일 정도 걸리므로 대략 5월 말쯤엔 윤곽이 나올 텐데, 심사 과정에서 영업이나 재무, 경영투명성, 지배구조까지 종합적으로 살펴 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창업자인 김슬아 컬리 대표의 지분율이 5%대로 낮다는 점과 적자 해소 방안 등에 대한 시장 우려를 보완해서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IPO 주관사 관계자는 “비밀유지협약 때문에 보완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대략 시장에서 예상하는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자 지분율이 낮으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거래소는 창업자에게 다른 재무적인 투자자들과 협의해 공동 의결권 20% 이상을 확보하고, 재무적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지 않는 보호예수 기간을 2~3년으로 설정하는 방안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상장사를 단 한 곳이라도 더 유치하고 싶어하는 거래소가 왜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것일까? 컬리의 주주 분포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컬리의 최대주주는 중국 자본으로,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다. /그래픽=이민경 조선디자인랩 기자

컬리 창업자인 김슬아 대표보다 지분이 많은 재무적 투자자들만 5곳이다. 1~2대 투자자는 중국 자본으로, 두 곳 지분율만 25%에 달한다. 나머지 재무적 투자자들도 언제든지 팔고 떠날 수 있는 미국, 홍콩 등의 외국계 펀드들이다.

“주주 구성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락업(보호예수)이 있더라도 언젠가 전부 시장에 쏟아질 매물이고, 결국 개미들이 다 받아줄 것 아닌가”(가치투자클럽 운영자)라는 한탄이 나올 만도 하다.

컬리의 최대 주주는 세콰이어캐피탈 차이나로, 지분 12.87%를 보유하고 있다. 벤처캐피탈(VC)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미국 세콰이어캐피탈의 중국 자회사로, 알리바바, 징동닷컴, 메이투안, DJI, 360, ZTO익스프레스 등 쟁쟁한 중국 기업들에 투자한 이력이 있다.

마켓컬리 측은 “중국에서 운용되는 펀드이지만, LP(출자자)들은 미국, 중국, 한국 등으로 국적이 다양하다”면서 “최대주주가 중국 자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는 한국 시장에서 마켓컬리 외에 토스에도 투자하고 있다. 사진은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의 홈페이지 캡처. 투자한 곳이 궁금하다면 링크를 클릭(www.sequoiacap.cn/china/en/companies)

컬리의 2대 주주는 중국 최대 투자전문회사 중 하나인 힐하우스캐피탈로, 11.89%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설립된 힐하우스캐피탈은 중국 텐센트와 징동닷컴, 메이투안 등에 초기부터 투자해 큰 돈을 번 곳으로, 아시아 기업들에 주로 투자한다.

창업주인 장 레이(Zhang Lei)는 1972년생으로, 중국 인민대 졸업 후 예일대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장 레이는 다들 꺼려도 자신의 투자 철학에 맞는 기업이라면 큰 돈을 거침없이 투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부호인 유리 밀너가 지난 2005년 창업한 VC인 DST글로벌이 10.17%를 보유해 컬리의 3대 주주다. 4대 주주는 홍콩계인 애스펙스 캐피탈(Aspex Master Fund)이고, 5대 주주는 미국의 오일러 캐피탈(Euler Fund)이다.

국내 VC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들은 스타트업의 미래 성장성을 한국계 VC들보다는 높게 쳐주는 편이라서 외부 수혈이 필요한 창업자들 입장에선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켓컬리 가입 고객은 지난해 43% 증가해 100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마켓컬리의 퍼플 박스./조선DB

컬리는 상장 때 기업 가치를 최대 6조원까지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 홍콩계 사모펀드에서 자금(2500억원)을 유치할 때 몸값으로 4조 평가를 받았고, 재무적 투자자들이 성공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려면 그 이상으로 상장이 진행되어야 한다”면서 “다만 최근 국내 증시 분위기가 달라져서 (컬리가) 원하는 몸값만큼 인정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모주 투자 전문가인 박현욱(슈엔슈 운영자)씨는 “유통 공룡 이마트의 시가총액이 지금 4조원이 채 되지 않고 신세계는 2조5000억원 수준인데 컬리가 6조원 가치를 받겠다고 하는 건 과한 것 같다”면서 “1년 전에 공모가 35달러에 미국에서 상장한 이후 현재 17달러 수준으로 하락한 쿠팡이 컬리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의 힌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오린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음식료품 온라인 플랫폼 중에 나스닥 상장을 완료한 글로벌 피어(유사그룹)로는 중국의 미스프레쉬와 딩동 마이차이가 있는데 둘 다 주가 흐름은 좋지 않다”면서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두 기업 모두 적자를 쉽게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년 동안의 쿠팡 주가 추이. 1년 동안 주가는 63% 하락했다. 한때 50달러를 넘기도 했지만, 3월 31일 종가는 17.68달러였다.

운용사 대표인 A씨는 “신선식품 샛별배송이라는 것은 유통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선점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독점적인 비즈니스는 아니다”면서 “가령 쿠팡이 전국 각지에 포진한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30분 배송’을 시도하고 있는데 성공한다면 샛별배송의 가치는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컬리가 원하는 만큼의 기업가치를 기관들이 인정해 줄 것인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공모주 시장의 투심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달 바이오 기업인 보로노이가 8000억원이 넘는 상장 몸값을 제시했지만, 기관 수요예측에서 참패하면서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한국거래소가 창업자 지분율이 5%대에 불과한 회사 상장을 어떻게 심사할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국내 증시에는 흑자 기업만 상장시키고, 적자 기업은 쿠팡처럼 (미국으로) 보내라”는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쿠팡처럼 미국 상장을 고려하고 있다고 작년 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부진한 쿠팡 주가 흐름이 오히려 한국 상장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한국 증시에 마켓컬리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미국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심영철 웰시안닷컴 대표는 “컬리는 대마불사 느낌이 있어서 거래소가 승인은 내줄 것 같지만, 기업 가치를 4조 이상으로 진행한다면 기관 수요 예측에서 부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철회 후 재도전을 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