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퍼사이클(장기 상승장)이라고 해서 샀는데 계속 물타다가 대주주 되겠어요. 이번에 실적 발표를 보고 추매와 손절 중에 선택하려고요.”(50대 투자자 이모씨)

오는 7일 삼성전자의 1분기(1~3월) 실적 발표일을 앞두고, 500만 삼성전자 소액 주주들이 초긴장 모드다. 삼성전자 주가가 5일 6만9200원까지 주저앉은 가운데, 1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서 향후 투자의 방향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6조5000억원 어치 사모았다.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합하면 7조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연기금 등 기관은 삼성전자 주식을 5조원 넘게 팔아 치웠고, 외국인도 1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개인들은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대로 떨어진 3월에만 3조8000억원 어치 순매수했다. 나머지 2~10위 종목들의 순매수 금액을 다 합해도 삼성전자 한 종목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개인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 전망은 어떨까? 이달 초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1분기 실적에 대한 증권사 전망치(컨센서스)는 매출액 75조823억원, 영업이익은 13조283억원이다. 증권가 예상이 맞다면, 삼성전자는 1분기 기준으로 매출 70조원 시대를 처음 열게 된다.

1분기 호실적 발표가 예상되고 있지만 주가 흐름은 영 신통치 않다. 지난 4일 삼성전자 종가는 6만9300원. 올해 들어서만 12% 하락했다. 작년 초만 해도 ‘반도체 수퍼사이클’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는 9만원을 돌파해 10만원 턱밑까지 올랐지만, 1년여 만에 6만원대로 밀려 버렸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삼성전자는 한국 증시에 대한 비중을 낮추는 연기금과 외국인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면서 “올해 실적 개선폭이 전년 대비 크지 않다는 이유로 매도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편 위원은 이어 “하지만 환율 효과로 실적이 예상보다 더 좋게 나올 수 있고 두 매매 주체가 연일 큰 규모로 매도해도 주가가 크게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향후 주가 반등 시점에는 큰 탄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랜 주가 횡보에 인내심이 바닥난 개인들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 말 삼성전자 소액 주주 수는 506만6351명으로, 전 분기 대비 2.4%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소액주주 수가 전 분기 대비 감소한 것은 지난 2019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주식 투자 경험이 길지 않은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이 대표 주식이라고 해서 사긴 샀는데 (다른 테마주처럼 급등하지 않으니까) 재미도 없고 속이 터져서 바로 빼게 된다”고 말한다.

심영철 웰시안닷컴 대표는 “한국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단기 투자에만 치중한다”면서 “1주일만 주가가 안 올라도 지루하다며 바로 팔아버리는데 삼성전자는 장롱 속에 넣어두겠다는 생각으로 인내심 있게 매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돌부처와 같은 인내심과 평정심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모아 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 투자자가 삼성전자 주주 중에 있다. 바로 삼성전자의 3대 주주인 ‘블랙록’이다(2대 주주는 국민연금).

블랙록은 10조달러(약 1경2115조원)를 굴리는 전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장기 투자 목적으로 저평가된 대형주를 주로 사들이는 ‘롱텀펀드’로 알려져 있다. 블랙록은 지난 2019년 1월 삼성전자 지분 5.03%(3억39만1061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주요 주주로 이름을 알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2019년 1월 삼성전자 3대 주주 자리에 올라섰다./금융감독원

그렇다면 과연 블랙록은 삼성전자를 매수한 이후 계좌 잔고를 얼마나 불렸을까? 왕개미연구소가 4일 삼성전자 종가를 기준으로 삼성증권에 의뢰해 계산해 봤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19년 1월 공시일 종가(4만4750원) 기준으로 블랙록의 삼성전자 보유지분 평가액은 13조4425억원이었다. 2022년 4월 4일의 보유지분 평가액은 20조8471억원으로, 3년여 동안 7조4046억원이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블랙록은 삼성전자 주식을 산 이후 팔지도 않고 더 사지도 않았는데, 그 동안 13번의 배당을 받았다. 2020년 말에 나온 특별배당까지 포함해 블랙록이 받아간 배당금은 자그마치 1조8780억원에 달한다.

블랙록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계좌에 3년여 기간 주식을 보유한 것만으로, 배당금을 포함해 자산을 약 9조2826억원 늘렸다.

전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의 핑크 CEO는 지난 달 보낸 주주 서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진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거래 대신 관계 중단 같은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블랙록

삼성전자 장기 보유로 큰 수익을 거뒀으니, 블랙록이 요즘처럼 삼성전자 주가가 빠졌을 때 추가 매수를 해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블랙록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의 최근 발언을 보면 그럴 것 같진 않다.

핑크 CEO는 지난 달 24일 보낸 주주 서한(letter to shareholders)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후 유지되던 세계 질서를 뒤엎었다(upended)”면서 “주권 국가에 대한 공격은 거의 80년간 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30년간 우리가 경험해 온 세계화(globalization)에 종지부를 찍었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재평가하는 과정 속에 정부와 기업들은 제조 공장을 자국이나 인근 국가로 옮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 각국에서 사업을 철수(pull back)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핑크 CEO는 ‘제조 허브’로 부상해 새롭게 수혜를 볼 만한 국가로 미국, 멕시코, 브라질, 동남아시아 등을 꼽았다. 한국은 그가 언급한 국가 리스트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