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고령자 간병이라고 하면 며느리, 딸, 아내 등 여성을 떠올린다. ‘케어=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인 대국 일본에서는 남성이 간병하는 일이 흔하다. 3명 중 1명꼴로 남성이다.

특히 자녀가 부모를 간병하는 경우, 부모의 병 수발을 아들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들 간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저출산과 핵가족화, 비혼·만혼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중년의 아들들이 부모의 간병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에서는 아들간병이 며느리간병(31%→13.2%)을 앞질렀다. 지난 2001년만 해도 아들간병은 주된 간병인 비중에서 10.7%였지만 2019년엔 17.8%로 증가했다./일본 후생노동성

◇저출산과 비혼으로 늘어난 아들 간병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1년만 해도 10.7% 정도였던 아들 간병 비율이 지난 2019년 17.8%까지 높아졌다. 1977년의 아들 간병 비율(2.4%)과 비교하면 40여 년 만에 7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 며느리 간병 비율은 지난 2001년 31%에서 2019년 13.2%까지 급감했다.

한창 일할 시기의 중년 아들이 늙은 부모를 간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 때문이다(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36명). 자녀 수가 크게 줄었고, 외아들이면 아들 간병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또 평생 독신으로 살거나 늦게 결혼하는 트렌드도 아들 간병의 원인이다. 시부모 봉양이 자신의 의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며느리들의 의식 변화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개호(介護)는 한국어로는 간병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 정부는 '간병중'이라는 마크를 보급시키고 있다. 성별이 다른 간병인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일본 교토 후쿠치야마시

라이프 저널리스트인 오타 사에코는 “친부모 간병도 힘든데, 배우자 부모님을 간병하는 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라며 “배우자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간병 의무가 얹어지면 부부 관계가 악화하면서 가정이 붕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는 ‘간병 이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노부모 간병이 황혼 이혼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5년째 돌보고 있는 50대 회사원 A씨는 “어머니의 치매 발병 사실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내 어머니에 대한 아내의 의무부터 없애줬다”면서 “어머니 때문에 우리 가족까지 망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겐 이제 어머니는 남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돌보는 건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일본의 가족 간병 통계를 보면 이 밖에도 아들과 딸 모두 부모 간병의 책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과 아무리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고 있어도 사위는 장인·장모의 병 수발 책임에서 예외라는 점 등이 눈에 띈다.

코로나 이후 케어맨(남성 간병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에 열린 일본의 '남성간병네트워크' 모임 회원들의 줌미팅 모습./일본 남성간병네트워크

◇‘케어맨(남성 간병자)’ 모임 늘어나는 일본

‘닥쳐오는 아들 간병의 시대’라는 책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히라야마 료는 “부모 간병을 하는 남성 중 절반은 배우자가 있는 기혼자이고, 이혼이나 사별한 경우는 18%, 독신이 28%”라며 “간병을 시작하기 전에 남성들은 50%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 간병 이슈에서 젠더(성별) 불균형 현상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령 부모가 있는 남성들은 (본인이 간병을 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여전히 딸이나 며느리의 몫으로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병 보험이나 간병 서비스 등 간병에 대처하는 요령에 대해서도 대체로 무지한 편”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간병’은 집안 어른은 며느리가 모시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이 수행하는 허드렛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에선 며느리부양이 줄고 아들이 부모 간병의 짐을 짊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일러스트=정다운 조선디자인랩 기자

일본 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는 ‘아들 간병’은 지역 네트워크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다. 대기업 화이트칼라 등 현역 시절의 명함과는 상관없이 부모를 간병하는 아들(혹은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모이는 ‘케어맨(남성 간병자) 모임’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09년 발족한 ‘남성간병네트워크’ 모임의 쓰토메 마사토시 사무국장은 “지역 내에 있는 간병자 모임은 주로 여성 위주여서 불편할 때가 있는데, 케어맨 모임은 같은 처지에 있는 남성들이 교류하면서 간병 요령 등도 배우고 알아나갈 수 있다”면서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남성 간병자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간병하면서 살아가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