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에서 요즘 출장 중고상이 인기다. 전문가가 집으로 직접 방문해 우표, 보석, 양주, 명품, 시계, 골동품 등 집에 있는 온갖 물품들을 안방에서 바로 현금화해준다.
일본의 출장 중고상 프랜차이즈 업체인 ‘아타카라야(あたからや)’는 지난 달에만 일본 전역에 신규 점포를 43곳 열었고, 4월에도 벌써 9곳이나 오픈했다.
이런 출장 중고상을 이용하는 고객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물건들을 팔까?
일본의 FNN프라임온라인은 최근 출장 중고상을 이용한 평범한 주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의뢰인은 도심에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50대 여성. 이 여성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의 교육비가 엄청나게 드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계 수입이 20% 줄어 (명품을 팔아) 생활비와 학비에 보태려고 의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50대 여성은 20대 싱글 시절에 샀던 샤넬백 8점과 샤넬 손목시계의 감정을 의뢰했다. 당시 10만~30만엔 정도에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롱 속에 보관한 시간이 20년도 넘다 보니 일부 샤넬백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외출할 때 들고 나가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너덜너덜했다.
의뢰인은 상태가 좋지 않은 샤넬백 감정을 요청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놀랍게도 출장 중고상 직원은 “1980년~90년대 초반의 일본 버블 호황기에 유행했던 빈티지 명품들이 젊은층에 매우 인기”라며 “상태가 나쁜 샤넬백은 수선해서 재판매할 수 있으므로 샤넬백은 대부분 매입한다”고 말했다.
샤넬백 8점과 샤넬 손목시계 1점을 중고로 판 50대 주부가 출장 중고상에 팔아서 손에 쥔 현금은 205만엔(약 2000만원). 그가 가진 샤넬백 중에 가장 고가로 팔린 상품은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30만엔에 샀던 작은 사이즈의 샤넬백(미니 마트라스)이었다. 출장 중고상 직원은 “캐비어 스킨 샤넬 미니백은 흠집이 잘 생기지 않는 데다 최근 작은 사이즈의 샤넬백이 유행이어서 프리미엄이 붙어 60만엔”이라고 제시했다.
작년 말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시리즈에서 ‘샤넬 오픈런’을 심층 보도해 화제를 모았던 한경진 에버그린콘텐츠부 기자는 “오래된 샤넬백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스토리와 역사가 쌓이는 빈티지 제품이라고 여겨져서 높은 가치가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와인도 빈티지가 비싸듯, 닳고 해진 샤넬백이라도 오히려 버블 호황기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프리미엄이 더 붙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천만원 들고 백화점 개구멍 찾는 ‘샤넬 노숙자들’ [라인업] 기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2탄 기사는 고기 불판, 말싸움, 욕설에 경찰출동까지...샤넬은 ‘샤넬 노숙자’가 밉다? [라인업] 기사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한경진 기자가 생생히 전하는 현장 유튜브 영상은 여기를 클릭. 조선닷컴에서만 실행됩니다.)
한경진 기자는 이어 “지난 2019년에 명품시계 바쉐론 콘스탄틴이 50~100년 된 빈티지 시계 18점을 국내에서 선보였는데 바로 완판됐다”면서 “상처가 영광이 되는 곳이 바로 빈티지의 세계이며, 빈티지만의 매력 때문에 지갑을 여는 매니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명품시계 복고바람… 100년의 역사를 선물하다” 기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조선닷컴에서만 실행됩니다.)
지난해 샤넬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은 32% 늘어나 1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67% 증가해 2490억원을 기록했다. 3개월에 한 번꼴로 이어진 가격 인상과 뜨거운 수요가 힘이었다.
샤넬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을 계속 올리지만(올해도 이미 두 차례 가격 인상) 수요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서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다가 개장과 동시에 뛰어 들어가는 ‘오픈런’ 현상은 외신들이 ‘해외 토픽감’으로 보도할 정도다. 하지만 코로나 유동성 버블 시기에 구입한 샤넬백의 중고 가격이 30년 후에 더블 혹은 트리플이 된다면, 지금 몸이 좀 힘들더라도 오픈런하는 보람은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