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거나 찍어서 사기만 하면 벌던 시장은 끝났습니다. 전쟁과 인플레, 금리 상승 등 대외 환경이 썩 좋지 않고 코로나 이후 (주식을) 살 사람은 거의 다 샀기에 수급도 우호적이지 않죠.”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는 2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IT버블 시기에도 코스닥에서 아무 주식이나 사도 돈을 벌었다”면서 “하지만 호시절이 끝난 후에도 수많은 개인들은 옛 기억으로 매매했고 결국 대부분 손실을 본 채 증시를 떠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설립된 블래쉬자산운용은 여의도 증권가에선 그 동안 수퍼개미가 세운 운용사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운용 규모는 약 1700억원.
하지만 지난해 국내 헤지펀드 중 수익률 1위를 기록하면서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헤지펀드란,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사모펀드를 말한다.
돈 되는 건 다 투자하는 게 헤지펀드라지만, 오로지 국내 시장에서만 운용해서 지난해 130%(블래쉬멀티전략일반사모)의 수익률을 거뒀다. 지난해 코스피 연간 상승률은 3.6%에 불과했지만 블래쉬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다른 3개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도 모두 100%를 넘었다. 백 대표는 펀드 가입자들에게 “작년 수익률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추가 설명을 해야 할 정도였다.
블래쉬운용은 저평가된 가치주와 지금 당장은 비싸 보이지만 앞으로 고성장할 수 있는 종목(즉 미래에 가격이 싸질 수 있는 회사) 70~80개를 골라 투자한다. 실제로 이런 하이브리드 투자가 작년 고수익의 비결이었다. 백 대표는 “작년 상반기에는 건설주, 금융주 등 가치주가 오르면서 좋은 성과를 냈고 하반기에는 위메이드(현재 미보유) 매매로 큰 수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운용 목표는 매년 깨지지 않고 꾸준히 두 자릿수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지수 선물 매도와 종목 공매도 등을 통해 헷지도 하고요. 헷지를 하는 이유는 고객들이 가입 기간 중 변동성을 참지 못해 펀드를 깨지 않도록, 수익률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나는) 지금 당장 계좌가 10% 넘게 깨져 있어도 앞으로 벌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10~15% 하락하면 공포 때문에 펀드를 깨버린다”면서 “변동성 있는 하락기만 버티면 앞으로 많이 벌 수 있는데, 당장 손실이 났다고 해서 바닥에서 팔고 떠나는 게 안타까워 헷지 전략을 쓴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원래 증권맨(DB금융투자) 출신이다. 증권사에서는 주로 영업을 했는데, 실적이 좋아서 꽤 높은 연봉을 받았다. 또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돈을 주식 투자에 썼는데 성과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당시 증권사 직원도 주식 투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계좌 잔고가 불어나서 ‘회사를 그만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난 2014년에 퇴직했다. 이후 여의도에서 전업 투자의 길에 뛰어 들었고, 지난 2019년 상장사 지분 5% 공시(약 200억원)를 하면서 수퍼개미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해 이례적으로 높은 펀드 수익을 냈지만, 한 해에 수익이 나고 다음 해에 손실나는 것보다는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돈을 크게 벌면 사고를 치기 쉽습니다. 주가가 계속 올라서 수익을 내는 것에 익숙해지면, 아무런 공부 없이 주식을 마구 사들이게 되지요. 가령 나는 카카오톡을 매일 쓰니까 카카오 주식을 사야지, 같은 단순한 아이디어로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겁니다. 주가가 하염없이 오르기만 할 수는 없는데,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묻지마 투자를 하는 거죠.”
결코 수월해 보이지 않는 국내 증시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그는 “연초부터 주가가 많이 빠져서 급락할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가가 강하게 오르기에는 모멘텀이 약하다”면서 “금융주, 정유주, 건설주 등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우량주 위주로 관심을 가져보고, 매수 전에 개별 기업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잘 알고 투자해야만 지루한 횡보장도 버틸 수 있다”면서 “제대로 된 기업 분석을 해야만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고, 말도 안 되는 싼 주가에 파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의 레벨업을 위해서는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도 시급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한국보다 대만의 전쟁 리스크가 더 높지만, 외국인들은 우리 시장을 대만보다 더 나쁘게 보는데 바로 거버넌스 때문”이라며 “한국 상장사의 대부분 오너들은 회사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너 일가의 부를 늘리는 쪽으로만 경영 의사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상장사인 동원산업이 추진하고 있는 동원엔터프라이즈(비상장사)의 흡수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백 대표는 “과거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 간 합병처럼, 동원그룹은 합병 비율을 지배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산정하기 위해 동원산업 가치를 장기간 눌렀고 결과적으로 합병 비율이 소액 주주들에게 매우 불리해졌다”면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손해가 나면 같이 망하고 이익이 나면 대주주만 이득인 한국 증시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