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같은 날 상장된 테마형 ETF(상장지수펀드)들이 올 들어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 상장한 글로벌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ETF 4종목의 가격(26일 기준)은 지난해 말 대비 19.1~26.4% 하락했다. 이보다 2달쯤 전인 10월 13일 동시 상장한 국내 메타버스 ETF 4종목의 가격도 올 들어 20.3~26.5% 하락했다. 지난해와 올해 4~5종목이 같은 날 동시에 상장된 테마형 ETF 중에서 올해 수익률이 플러스인 것은 작년 9월 30일 상장한 탄소배출권 ETF 4종뿐이다. 다른 테마형 ETF는 모두 올 들어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자산운용사들이 동일한 분야에 투자하는 ETF를 준비하고 있을 경우 4~5종목을 같은 테마로 묶어 같은 날 상장시키고 있다. 특정 운용사의 ETF를 먼저 상장시키면 일종의 ‘선점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테마형 ETF들은 상장 당시에는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이 효과가 오래가지는 못한 것이다.

◇약세장에 취약한 성장주 ETF

문제는 지난해와 올해 상장된 테마형 ETF들이 대부분 성장주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주는 당장의 실적보다는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 등을 보고 투자하는 주식인데, 최근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성장주에 대한 투자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현재 가치로 환산한 성장주의 ‘미래 가치’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메타버스 ETF의 투자 대상 중에는 성장주 성격의 기술주들이 많다. 또한 국내 메타버스 ETF의 주요 투자 종목인 게임 기업들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향후 ‘돈 버는 게임(P2E·Play to Earn)’ 출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양호한 주가 흐름을 보이던 게임 회사들이 기대치를 하회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하락세로 전환한 점도 국내 메타버스 ETF의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자산운용사들은 “장기 투자를 고려한다면 여전히 메타버스라는 테마는 유망 투자 테마”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애플과 구글이 확장현실(XR)·증강현실(AR) 헤드셋 등 메타버스 관련 하드웨어를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하면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상장한 과창판(科創版·커촹반) ETF 4종목의 수익률 역시 비슷한 이유로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상장 후 수익률이 -33.3~-30.7% 수준이다. 과창판은 중국 내 혁신 기술 기업의 자본 조달을 위해 2019년 7월 상하이거래소 내에 별도로 설치된 독립 시장으로, IT(정보 기술) 기업과 헬스케어·바이오, 신소재 기업 등으로 주로 구성돼 있다. 성장주 성격이 강한 주식들이 많다 보니 각국 중앙은행들이 긴축 행보를 이어가면서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중국 내 코로나 확산’이라는 악재도 추가됐다. 삼성자산운용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경기 부양책과 과도한 방역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지속되는 만큼 추세적 상승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기후변화 대응 ETF도 엇갈린 수익률

같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테마형 ETF 사이에도 수익률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2월 상장된 탄소효율 그린뉴딜 ETF 4종목의 올해 수익률은 -11.5~-1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작년 10월에 상장된 기후변화 솔루션 ETF의 가격도 작년 말 대비 11.4~11.9% 하락한 상태다. 반면 유럽 등 해외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ETF 4종목의 수익률은 2.1~5.2%로 글로벌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돋보이는 수준이다.

투자하는 자산의 성격이 수익률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효율 그린뉴딜 ETF와 기후변화 솔루션 ETF는 대부분 국내 주식이 투자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 증시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좋은 수익률을 기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반대로 탄소배출권 ETF의 투자 대상인 탄소배출권(선물)의 경우 주식과는 다른 가격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에, 증시가 약세를 보일 때 ‘투자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탄소배출권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