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시작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관련주들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관련주로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투자했던 로블록스가 올 들어 70%가량 하락하는 등 주가가 ‘폭락’ 수준으로 떨어진 기업들이 속출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메타버스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TIGER Fn메타버스’의 투자 대상 20종목 중 18종목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시각특수효과(VFX) 및 실감형 콘텐츠 기업인 자이언트스텝이 57.2% 하락했고, 게임회사인 펄어비스는 50.7% 떨어졌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이 첫 번째 악재로 꼽힌다. 메타버스 관련 주식들은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성장주’에 속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현재 가치로 환산한 성장주의 미래 가치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또 대면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인 메타버스의 이용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 관련 주, ‘엔터’ 빼고는 약세
메타버스 관련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메타버스 ETF의 올해 수익률도 저조한 수준이다. 특히 국내 메타버스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ETF의 수익률이 더 부진하다. ‘TIGER Fn메타버스’가 -24.2%로 그나마 가장 나은 수준일 정도다.
메타버스 관련 주의 총체적 부진은 거의 모든 업종·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임 기업인 엔씨소프트(-34.4%)와 펄어비스(-50.7%)의 올해 수익률이 저조한 수준이고, VFX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인 위지윅스튜디오(-16.2%), 덱스터(-40.2%), 자이언트스텝(-57.2%) 등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카카오(-20.1%), 하이브(-27.9%), 네이버(-24.3%) 등 메타버스 플랫폼 운영 기업의 주가도 작년 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자 기기 생산과 관련이 있는 ‘메타버스 하드웨어’ 기업들의 주가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LG이노텍 주가는 4.1% 하락해 전체적인 시장 수익률 대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LG디스플레이 주가는 31.9% 하락했다.
그나마 메타버스 관련 주 중에서는 연예기획사들의 주가가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올 들어 17.2% 올랐고, 와이지엔터테인먼트도 작년 말 대비 2.3% 상승했다. 연예기획사의 경우 코로나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단계적으로 해제되면서 대면 콘서트가 재개됐을 때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메타버스 관련 주식과 달리 올해 주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메타버스 약세에 서학개미 비상
해외 증시에서도 메타버스 관련 종목들은 약세를 면하지 못하면서, 이 종목들에 많이 투자한 서학개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서학개미 보유 금액 2위인 애플이 올 들어 11.1% 떨어진 것을 비롯해 3위 엔비디아(-36.9%), 4위 마이크로소프트(-17.3%), 5위 알파벳(구글·-21.2%) 등 메타버스 관련 주 수익률이 줄줄이 마이너스다.
회사 이름을 메타로 변경하며 메타버스 관련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페이스북의 주가는 올 들어 40.4% 하락했고,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주가는 70.3% 하락했다. 게임 개발용 소프트웨어(게임 엔진) 기업인 유니티 소프트웨어도 서학개미들이 25번째로 많이 보유한 종목인데 올해 수익률은 -53.6% 수준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주가 약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메타버스는 유효한 테마(투자 주제)”라는 반응이 나온다. KB자산운용은 “최근 급격한 주가 조정은 메타버스가 트렌드로서의 생명을 다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반사 이익을 누렸던 종목들의 성장이 일시적으로 둔화되는 사이클에서 벌어지는 가격 조정”이라고 했다. 메타나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이 성능이 향상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기를 내놓을 때마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질 것이라고 증권가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