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민연금을 주축으로 하는 연기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2020년 5월 이후 최대 규모의 순매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쳐가는 국내 증시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연기금은 국내 자동차·배터리 기업의 주식을 주로 사들였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연기금은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 465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는 코로나 사태의 충격으로 1457.64까지 하락했던 코스피가 다시 2000선을 회복했던 2020년 5월(5142억원 순매수) 이후 최대 규모의 순매수다.

/그래픽=김성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특정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서 전체 자산 중 해당 자산의 비중이 목표치를 넘어서면 내다 팔고,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비중이 작아지면 다시 사들이면서 수익률을 높인다. 올 들어 국내 증시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난달 국내 주식을 순매수한 것이다.

지난달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6381억원)이었다. 순매수 2위 역시 배터리 기업인 삼성SDI(1696억원)였고, 3위는 자동차 기업인 기아(1412억원)였다.

◇연기금, 국내 주식 보유 늘려

올 들어 국내 증시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지난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가치는 154조610억원으로 지난해 말(165조8080억원) 대비 11조70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국민연금의 전체 금융 자산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16.8%로 2020년 말(21.2%)이나 지난해 말(17.5%)에 비해서 크게 낮아졌다. 국민연금의 올해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16.3%지만, 전략적 자산 배분 허용 범위 3%포인트를 고려하면 19.3%까지는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코로나 사태로 국내 증시가 급락했던 2020년 3월에는 코스피 시장에서 3조286억원을 순매수했고, 같은 해 4월(1조5357억원)과 5월(5142억원)에도 순매수를 이어갔다. 연기금의 입장에서는 자산 가격이 하락했을 때 사들여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지만, 증시 전체로 보면 약세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기금이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카카오 팔았다

지난달 연기금의 주요 투자 대상은 자동차·배터리 관련 종목이었다. 순매수 1~3위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기아 외에도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엘앤에프(순매수 7위), 자동차 부품 업체 만도(9위), 현대차(10위) 등을 주로 순매수했다. 대신 반도체·인터넷 플랫폼 기업 주식은 팔았다. 삼성전자가 순매도 1위(3454억원), SK하이닉스가 4위(1516억원)였다. 네이버(1573억원·순매도 2위)와 카카오(1414억원·순매도 5위) 주식도 상대적으로 많이 순매도했다.

연기금이 지난달 주로 순매수한 종목의 주가 흐름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지난달 LG에너지솔루션(-5.7%)과 엘앤에프(-2.9%) 등은 주가가 하락했지만, 기아 주가는 13.2% 상승했다. 삼성SDI 주가도 2.5% 올랐고, 만도(8.2% 상승)와 현대차(3% 상승) 등의 주가도 상승했다. 단기 성과 측면에서 연기금의 투자 업종·종목 선택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상장지수펀드(ETF) 중에서도 자동차에 투자하는 KODEX 자동차(1.5%), TIGER 현대차그룹+펀더멘털(2.3%)이나 배터리 기업에 투자하는 KODEX 2차전지산업(0.9%), TIGER 2차전지테마(1%)의 지난달 수익률이 같은 기간 코스피200 지수 수익률(-2.9%)보다 높았다. 삼성자산운용 이대환 매니저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자동차의 경우 국내외 소비자의 대기 수요는 여전히 많다”며 “2분기에도 실적 개선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원자재 수급 불안 장기화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저하는 위험 요소로 투자 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