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계속 떨어질 건 생각 못 했어요. 이제는 미국 주식 하는 게 겁이 날 지경입니다.”

회사원 김모(38)씨는 지난 6일 밤 미국 뉴욕 증시가 개장하자 여유 자금을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TQQQ)’ 상장지수펀드(ETF)에 모두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봤다. 이 ETF는 나스닥 시장의 주요 종목 100개로 구성된 ‘나스닥100 지수’가 오를 경우 수익률이 3배가 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반대로 이 지수가 하락하면 손실률이 3배가 되는 리스크(위험)도 있다.

김씨는 전날(5일) 나스닥100 지수가 5.1% 하락했기 때문에 이날은 지수가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스닥100은 6일(-1.2%)과 9일(-4%)에도 연이어 하락했다. TQQQ의 가격도 9일 30.52달러로 5일 종가(35.86달러) 대비 14.9% 하락했다. 김씨뿐 아니라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올 들어 이 ETF를 16억7000만달러(약 2조1000억원) 순매수했는데, 대부분 큰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100이나 S&P500 지수 등 뉴욕 증시 대표 지수와 연계된 ETF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많이 늘었지만, 거듭된 증시 약세로 손실을 보면서 투자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서학개미들은 나스닥100이나 S&P500 지수의 등락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ETF 6종목을 1억달러 이상 순매수했다. 이 ETF들을 비롯해 애플·테슬라 등 미국 증시 대표 종목들의 주가가 올 들어 크게 하락하면서 서학개미들의 투자도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다.

◇2조원 넘게 순매수한 TQQQ의 배신

서학개미들이 올해 2조원 넘게 순매수한 TQQQ의 가격은 작년 말 대비 63.3% 하락했다. 올해 나스닥100 지수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승률의 3배 이익보다는 하락률의 3배 손실을 보는 날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나스닥100 지수 하루 상승률의 2배만큼 수익이 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 QQQ’도 서학개미들이 올 들어 1억8000만달러어치 순매수했지만 수익률은 -46.6% 수준이다.

장기 투자 목적으로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산 서학개미도 올해 투자 수익률이 만족스럽지 않다. 서학개미들은 대표적인 S&P500 지수 ETF인 SPDR S&P500(SPY)을 3억1000만달러어치 순매수했는데, 올 들어 이 ETF 가격은 15.9%나 떨어졌다. 이 ETF의 코드가 SPY라 서학개미들은 ‘스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학개미들은 뱅가드 S&P500(1억2000만달러)·아이셰어스 코어 S&P500(1억1000만달러) 등 다른 S&P500 지수 추종 ETF도 1억달러 이상 순매수했고,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2억6000만달러) 등도 1억달러 이상 순매수했지만, 역시 수익률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할 돈도 흥미도 없다

ETF 수익률만 부진한 것은 아니다. 올 들어 서학개미들이 많이 투자한 테슬라(-25.5%), 엔비디아(-42.4%), 애플(-14.1%) 등의 미국 대표 기술주들도 지난해 말 대비 주가가 하락했다. 지난해 말 기준 서학개미 보유 금액 9위(9억2000만달러)였던 전기차 업체 루시드 그룹은 작년 말 대비 주가가 57% 하락했다.

증권가에서는 “서학개미들이 크게 손실을 보고 있는 종목이 많기 때문에 일부 종목을 매도해서 신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학개미들 중에서는 “지금 손실 보고 있는 종목들 회복되면 얼른 팔아버리고 주식 투자를 당분간 접겠다”고 말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5월(1~9일) 서학개미의 일평균 거래대금(매수액+매도액)은 11억1000만달러로 월별 일평균 거래대금 기준으로는 2020년 11월(9억9000만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11억1000만달러는 지난해 2월 거래대금(24억9000만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