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 약세가 이어지자 고액 자산가들은 주식 대신 현금과 예·적금 비중을 늘리면서 시장을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본지가 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증권과 하나금융·신한금융투자 등 국내 7개 증권사 PB센터장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최근 고액 자산가들은 금융 자산의 절반 이상을 현금이나 예·적금으로 보유하는 등 ‘(투자를) 쉬는 것도 투자’라는 증시 격언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 응한 PB센터장들은 일반적으로 30억원 이상을 맡긴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한다.

주식 비중은 줄였지만, 고액 자산가들은 국내 증시에서는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 해외 증시에서는 애플·테슬라·구글 등 대표 기술주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들고 관망하거나, 간접투자로 돌아서

고액 자산가들은 현금을 들고 시장 상황을 관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KB증권 이환희 도곡스타PB센터장은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 중 현금과 예·적금의 비중이 55%로 국내·해외주식 비중(10%)의 5배가 넘는다”고 했다. 신한금융투자 염정주 청담금융센터장도 “고액 자산가들의 현금과 예·적금 비중이 40%로 국내외 주식(20%)의 두 배 수준이라고 했다.

NH투자증권 성현정 프리미어블루 삼성동 1센터장도 “현금과 예·적금 비중이 20%로 주식(10%)의 두 배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서상훈 GWM센터장도 현금과 예·적금의 비중이 30%로 주식(25%)보다 높았다.

미래에셋증권 정상윤 판교WM센터장과 삼성증권 정연규 SNI삼성타운금융센터 지점장은 “여전히 고액 자산가의 주식 비중이 현금과 예·적금보다 높다”고 했다. 그렇지만 미래에셋증권 경우 고액 자산가 자산 중 펀드 비중이 30%로 높았다. NH투자증권도 고액 자산가 자산 중 펀드 비중이 40%, 신한금융투자도 30% 등으로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의 비중이 높은 수준이었다. KB증권 이환희 센터장은 “개인의 직접투자가 매우 어려운 시장 상황”이라며 “전문가가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투자할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해외 주식의 비중이 높았다. 미래에셋증권 정상윤 센터장은 관리 중인 고액 자산가 자산 중 30%가 해외 주식으로 국내 주식 비중(10%)의 3배 수준이었다. 삼성증권 정연규 지점장도 해외 주식 비중이 30%로 국내 주식(20%)의 1.5배 수준이었다.

◇고액 자산가 삼성전자와 미국 빅테크 여전히 선호

고액 자산가들은 국내 주식 중에서는 삼성전자를, 해외 주식 중에서는 애플·테슬라·구글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국내외 주식은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6명(KB증권 제외) 가운데 4명이 “국내 주식은 삼성전자”라고 했다. 기아가 1명, 한국항공우주(KAI)가 1명이었다.

해외 주식의 경우는 6명 전원이 1,2 순위로 애플, 구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을 꼽았다. 빅테크 기업이 아닌 경우는 비자가 유일했다.

이환희 KB증권 센터장은 “현금 비중을 늘리고 시장 방향성을 확인한 다음에 투자하라”고 했다. 반면, 정연규 삼성증권 지점장은 “금리인상 등 대외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심한 상황이나 실적이 좋은 기업의 주식은 ‘저가매수’하면서 비중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미국 주식이 가장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경숙 하나금융투자 강남금융센터장도 “국내 주식보다는 미국 대형주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이 향후 주가 상승 시 변동성은 줄이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미국 주식 투자는) 달러로 가격이 표시된 자산을 보유한다는 이점도 있다”고 했다.

이미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우량 종목으로 갈아타기’를 주문한 경우가 많았다. 서상훈 한국투자증권 센터장은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손실이 난 주식이나 펀드를 파는 것은 좋은 전략은 아니다”라면서도 “적자기업이나 성장성이 불투명해진 기업이라면 과감하게 ‘손절’하고 우량 종목으로 갈아타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