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FIRE)로 살고 싶어서 미국 주식을 시작했는데, 제 계좌는 불타서 결국은 검은 재만 남았네요.”
“파이어를 홍보했던 유튜버는 100억 벌어서 빌딩을 여러 채 샀다는데... 영상 보고 주식 투자 시작한 사람들은 망했고, 변죽 울리는 사람들만 대박 났네요.”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며 미국 주식 투자에 나섰던 예비 파이어족(族)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파이어는 영어로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조기 은퇴)를 의미하는데,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자산을 모아 조기 은퇴하려는 젊은층을 말한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그만 두고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목표다.
파이어족은 장기간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던 미국 주식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꼽았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챙기고 싶어했던 젊은 투자자들은 나스닥 지수 움직임의 3배로 움직이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인 티큐(Proshares Ultrapro QQQ, 티커명 TQQQ)로 인생 역전을 노리기도 했다.
계획대로만 시장이 움직여 줬다면, 파이어 꿈도 멀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선호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올해 28% 빠졌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주식인 테슬라(한화 약 15조원)는 올해만 45% 급락해 반토막 직전이다.
티큐 주가는 더 처참하다. 올해 68% 하락해 지난 20일(현지시간) 종가는 27.34달러였다. 티큐 등 고위험 ETF로 인한 개인 투자자 손실이 커지자, 미국 금융당국이 레버리지 ETF의 투자 문턱을 높이겠다고 나설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ETF에 한국 투자자들의 돈이 가장 많이 몰렸다. 올해 순매수 1위 해외주식이 티큐다. 거의 2조3000억원 어치 사모았다. 티큐를 산 이후 밤마다 잠을 못 이룬다는 직장인 황모씨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 주식 중에 티큐를 사면 대박이 난다고 해서 (잘 모르지만) 매수했다”면서 “매일 돈복사가 된다고 해서 샀는데 돈삭제의 아픔을 당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손실의 고통을 겪는 것은 황씨뿐만이 아니다. 조기 은퇴를 꿈꾸며 투자를 이어왔던 젊은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심해진 약세장에서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회사원 이모씨는 “코로나 시절에 나스닥과 코인으로 많이 불려서 10억은 금방 채울 것 같았는데, 올해 시장 급락으로 본전이 됐고 잘못하면 까먹을 지경이 됐다”면서 “정년을 채우는 것으로 인생 목표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B씨는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여름밤의 꿈, 일장춘몽... 요즘 미국 증시를 보면 정말 많은 단어가 생각난다”면서 “이제 다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썼다.
일부 투자자들은 페드풋(FED PUT)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페드풋이란, 연준(FED)과 풋옵션(PUT)의 합성어로, 시장이 위태로울 때마다 연준이 주가 하락을 방어해주는 것을 말한다. 통상 시장 친화적인 정책 발언과 금리 인하를 통해 이루어진다.
23일 순살브리핑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월 미국 S&P500 지수가 10% 조정받았을 때, 연준이 3년간 기준 금리를 제로 부근에서 유지하겠다고 발표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또 지난 2019년에도 연준이 통화정책을 변경해서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다.
신기동 순살브리핑 대표는 “올해는 페드풋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세 뷰”라면서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인플레를 잡는게 연준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동준 KB증권 WM솔루션총괄본부장도 “올해는 물가가 너무 높고 경제가 여전히 좋은 상태여서 페드풋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금리 인상을 못할 정도로 경제가 나빠져야 풋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속도 조절을 하는 풋은 기대할 수 있지만, 하루 이틀 반짝 상승하다가 다시 급락하는 흐름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신 본부장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