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증식 하면서 열심히 살면 나중에 정부에서 주는 혜택 1도 못 받아요. 재산이 한 푼도 없어야 나라에서 공짜연금도 주고 먹여 살려줍니다.”

2021년 5월 31일 노인들이 탑골공원 담장 바깥에서 모여앉아 장기를 두거나 시간을 때우고 있다./오종찬 기자

“노부부가 기초연금으로 64만원 받을 수 있는데 뭐하러 국민연금을 넣나요? 국민연금 20년 넣고 100만원 받는 거랑 한 푼도 안내고 공짜연금 64만원 받는 거랑 어느 게 낫겠습니까.”

한국 젊은이들이 ‘국민연금 고갈’ 문제로 설전을 벌이는 요즘, 고령자들 사이에서는 ‘기초연금’이 최대 화두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인 만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평생 연금을 주는 복지 제도다. 올해 기준 연금액은 30만7500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노인 빈곤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노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을 10만원 인상해 40만원까지 높일 계획이다.

그런데 이렇게 금액이 껑충 뛰는 기초연금이 고령층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30%는 ‘왜 아동수당(월 10만원)처럼 보편적 복지를 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고, 기초연금을 받는 70%도 ‘국민연금 많이 받는다고 왜 기초연금을 깎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노후는 만원 한 장도 아쉬워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자료=보건복지부

◇ “65세 이상에게 다 지급하라”

“기초연금은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데 왜 차별하나요? 세금 많이 낸 사람은 못 받고, 세금 적게 낸 사람만 받는다니 이게 공정합니까!”

올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98만명. 이 중 소득 하위 70%에 속해서 기초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모두 628만명이다. 기초연금 기준에서 탈락한 고령자 270만명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지급해야 형평성에 맞는다”고 주장한다.

70대 은퇴생활자 이모씨는 “재원이 부족하면 연금액을 20만~25만원으로 낮춰서라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면서 “가난이 자랑도 아닌데, 젊어서 열심히 일해 집 한 채 장만했다고 기초연금조차 못 받는다니 이런 역차별이 어디 있냐”고 말했다.

기초연금 예산은 도입 당시 약 7조원에서 올해 약 20조원으로, 10년도 채 되지 않아 3배 가까이 늘었다. 지급액 인상과 노인인구 증가가 원인이었다./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이런 불만 계층을 겨냥해서 이번 6월 지방선거에는 ‘대상에서 빠진 30% 노인에게 지방재정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등장했다. 이런 공약을 낸 후보가 당선된다면, 앞으로 선거 때마다 비슷한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 “국민연금 감액 폐지하라”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소득 하위 70% 노인들도 불만은 있다. 국민연금을 많이 받으면 기초연금을 깎는다는 이른바 ‘국민연금 연계 감액 제도’ 때문이다. 은퇴 생활자는 한 푼이 아쉬운데,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고 해서 기초연금이 감액된다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국민연금은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아니고 강제 가입이다 보니 다들 할 말이 산더미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을 46만원 넘게 받고 있다면, 기초연금은 최대 50% 줄어든다. ‘국민연금 연계 감액 제도’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모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복지 제도인 만큼, 중복 혜택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 조항 때문에 기초연금을 전액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작년 기준 38만명, 평균 감액 금액은 월 7만원이었다. 지난 2016년만 해도 22만명이 평균 5만5000원 정도 감액됐는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 ‘연금이야기’ 운영자인 차경수씨는 “국민연금 연계 감액 제도는 전체 공적연금 개혁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선되어야 한다”면서 “수많은 소득 중에서 유일하게 국민연금만 따로 빼서 기초연금 감액을 한다면, 결국엔 국민연금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뜩이나 연금 고갈 이슈로 불안해진 상황인데, 국민연금 가입을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집에서 “국민연금 연계 감액 제도를 미세 조정해서 조금이라도 기초연금을 더 받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앞으로 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높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노인빈곤율(43.4%)이 가장 높았다. OECD 평균(14.8%)의 3배 수준이다./그래픽=이연주 조선디자인랩 기자

◇ 노인 빈곤 해결은 글쎄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들인 돈에 비해 실익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노인 빈곤율을 낮추는 효과는 높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초연금 수급자 상당수가 OECD 기준(월 97만원)으로 이미 가난한 노인이 아니다”라면서 “빈곤하지 않은 노인이 기초적인 의식주도 해결하기 어려운 노인들(월 58만원)과 똑같은 액수의 기초연금을 받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원 마련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지난 19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현 정부 공약대로 기초연금이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되면 재정 부담은 2040년 83조원에서 102조원으로, 2060년에는 193조원에서 236조원으로 급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