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금융감독원은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부실 채권 비율이 0.45%(10조8000억원)를 기록해 역대 최저치라고 발표했다. 국내 은행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 2020년 3분기 이후 7분기 연속 최저치 행진 중이다. 부실채권은 은행이 빌려준 돈 중에서 원리금이나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한 돈을 말한다.
그런데 증시는 이런 금융당국 발표를 믿지 않았다. 부실채권 비율은 안정적인 수준이지만, 정부가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 상환을 미뤄줘서 부실이 표면화되지 않은 착시 효과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런 의견이 확산되면서 이날 KRX은행지수는 전날보다 2.52% 하락한 768.15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 업종 지수 중 최대 하락률이다. KRX은행지수는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개 은행 주가를 모아 만든 지수다.
외국인과 기관의 양매도 공격에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이 각각 3.84%, 3.64%씩 떨어지면서 4만7600원, 5만8200원에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 매물은 전부 개인 투자자들이 받아냈다. 외국인 순매도 종목 상위 10개 종목 중 KB금융이 5위(269억원)였고, 하나금융지주가 10위(116억원)였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융주는 금리 상승에 따른 이익개선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하다가도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면 힘들어지고, 변동성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는 디지털 자산 시장의 혼돈이 금융업계에 회색 코뿔소(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가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디지털 자산과 관련해 전통 은행 자산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어 시스템 리스크로의 전이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금융센터가 펴낸 ‘테라·루나 사태의 파급 영향 및 위험전이 경로 점검’ 보고서 역시 테라·루나 사태 이후 가상화폐 시장에 불안감이 확대됐지만 현재는 진정됐으며, 전통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도 제한적이었다고 밝혔다. 테라와 루나는 지난 달 가격이 99.99% 폭락해서 글로벌 시장에 큰 충격을 준 가상화폐다.
이어 보고서는 가상화폐 시장이 규제 사각지대인 데다 전통 금융시장과의 연계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 가상화폐를 포함시키고, 가상화폐 담보대출 상품까지 출시한 상황인 만큼, 가상화폐 시장 불안이 확대되면 금융회사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세계 상위 100개 은행 중에 55개 은행이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 건수가 가장 많은 은행은 22건에 달한다. 또 지난해 글로벌 헤지펀드의 21%가 가상화폐 시장에 투자(운용자산의 3%)했다.
신술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가상화폐 시장 규모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1% 이하에 불과한데,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도 1% 이하였지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면서 “시장 침체가 투자자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난 1월 “미국에서 주식 투자는 부유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들이 중심인데, 가상화폐는 보유자의 55%가 대학 학위가 없는 저학력자”라며 “가상화폐 시장 침체가 나타나면 사회 약자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