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총재는 연봉이 3500만엔(약 3억3000만원)이나 되니, 서민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구로다 총재는 언제 수퍼에 가봤는가. 일본은행은 늘 돈이 넘쳐나니, 돈을 써야 하는 ‘인간’의 생활을 모르는 것 같다.”
“일본은행 탑이 일본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불안과 체념의 심정을 느낀다.”
역대급 엔저(円低·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 일본은행 총재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7일 교도통신이 주최한 행사 연설에서 통화 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일본 가계가)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가계 저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견뎌내고 있다면서 “저축이 많은 국민들이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이는 동안, 양호한 거시 경제 환경을 유지해서 내년 이후 본격적인 임금 상승으로 이어가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난해 일본 가계는 연 수입의 34.2%를 저축했는데,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10%포인트 높은 것이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주요국은 금리 인상 등 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일본은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면서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엔화 가치 추락으로 수입 물가가 올라 생활 물가 상승에 고통받고 있는 일본인들은 구로다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발끈했다.
도쿄 인근에서 살고 있는 60대 자영업자 A씨는 7일 아사히뉴스네트워크(ANN)와의 인터뷰에서 “구로다 총재가 우리 동네에서 세후 20만엔(189만원)으로 직접 생활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50대 주부는 “물가 상승을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라, 참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도쿄 인근의 한 시장 상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10엔, 20엔 정도의 가격 차이에도 소비자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라, 사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구로다 총재가 “수퍼에 직접 가서 사본 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내가 물건을 사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급기야 하기우다 경제산업상이 “부인이 도맡아서 장을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 발언이었다”고 밝혔다. 서민들의 고물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총재에 화난 일본인들은 SNS에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비판글을 올리고 있다.
결국 구로다 총재는 지난 7일 오전 의회에서 “일본 국민들이 가격 인상을 수용하고 있다고 한 발언은 사실은 임금 인상의 중요성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라며 “다소 지나치게 강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판을 감수하겠다”고 해명했다.
생활 물가가 오르면서 일본 소비자들의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33엔까지 올라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물가 변동을 고려해 다른 통화 대비 일본 엔화의 종합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5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4월 수치는 60.91로, 50년 전인 1972년 이후 최저치다. 해외에서 엔화로 물건을 사올 때 그만큼 비싸졌다는 뜻이다.
내년 4월 임기를 채울 때까지 사임할 생각이 없다는 구로다 총재는 일본의 임금 인상이 부족하다고 늘 얘기한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그의 연봉은 정확히 3501만엔(약 3억3100만원)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그의 연봉이 많아서 현실을 모른다고 아우성이지만, 그의 연봉은 한국은행 총재 연봉보다 작다. 이주열 전 총재가 지난 2018년에 받은 연봉이 3억5400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