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 입문하는 초보 투자자들이 가장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대형주 위주로 장기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22일 신한금융투자가 10년 전인 2012년 미국과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을 뽑아 최근까지 주가 등락률을 살펴본 결과, 미국에선 3종목, 국내에선 5종목의 주가가 10년 전보다 낮았다. 금융 정보 업체 레피니티브와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활용해 2012년 5월 말과 지난달 말 주가를 비교한 결과다.
뉴욕 증시 대형주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10년 전 시총 1위였던 애플 주가는 621.4% 올랐다. 반면 시총 6위였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주가는 46.7%나 하락했다. 국내에서도 시총 1위 삼성전자의 주가는 10년간 178.3% 상승했지만, 시총 2위였던 현대차의 지난 10년간 수익률은 -22.3%였다.
◇IT 기술주 상승, 전통 제조업 하락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최근 10년간 주가가 많이 오른 대형주들은 IT(정보기술) 기술주들이다. 미국에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831.4%) 등의 주가가 많이 올랐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367.5%) 등이 강세를 보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와 저물가 현상이 10년간 대형주 주가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현재보다는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성장주 성격의 IT 기술주들이 낮은 자금 조달 비용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갈 수 있었다”고 했다.
반면 이런 환경은 전통 제조업 주가에는 ‘호재’로 작용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GE, 한국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10년 전에 비해 낮아지는 역주행을 했다. 미국 증시에서 엑손모빌(22.1%)과 셰브론(77.7%) 등 에너지 기업의 주가 상승률도 IT 기업보다는 낮았다.
정명지 팀장은 “올 들어서는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서 최근 10년과는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형 기술주들의 주가가 크게 조정을 받은 반면, 에너지·자동차 기업 주식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저유가·저금리 기조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전통 산업들이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화·정’처럼… 산업 트렌드 바뀐다
국내 증시에서는 10년 전 시총 상위 10개 종목 중 5곳 주가가 하락했다. 현대차(-22.3%), POSCO홀딩스(-20.2%), 현대모비스(-21.1%), 한국조선해양(-59.5%), 삼성생명(-30.2%) 등이다. 보통주 기준으로 10년 전 시총 2위였던 현대차는 시총 8위로 추락했고, 나머지 네 종목은 10위권 밖으로 모두 밀려났다. 한국조선해양의 시총 순위는 54위다.
이러한 ‘역주행’의 원인을 산업 트렌드의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반에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주(株)]’ 종목이 국내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주가가 하락하면서 이들 종목이 고점일 때 투자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 이처럼 산업 트렌드는 계속 바뀌기 때문에 미래에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나 종목이 아니라면 장기 보유해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들이라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할 경우 주가가 정체되기 마련이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설립 후 30년 이상이 지난 기업들은 대체로 비즈니스의 성숙기를 지났기 때문에 최근 10년간 주가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적극적으로 M&A(인수·합병)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주춤하자 “기존에 성과를 내던 분야 외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성과를 내거나, M&A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