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이렇게 오르는데 연금도 당연히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물가 시기에 연금액이 2년 연속 줄어들다니 정부를 믿을 수가 없네요.”(80대 여성)
“노인들 힘든 건 이해하지만, 내 노후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도 모를 돈을 매달 쥐꼬리 월급에서 떼이는 우리 입장도 고려해 달라.”(30대 남성)
“(고령층이) 연금 감액에 불평하는 것 이해한다. 하지만 나중에 연금 제도가 붕괴될 것이란 불안감을 안고 사는 젊은이들도 생각해 보라.”(30대 여성)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올해 연금을 0.4% 감액해서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온라인에서 격렬한 세대(世代)간 논쟁이 벌어졌다.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노인과 손자가 연금 혜택과 부담을 놓고 찬반 격론을 벌였다. 연금에 의지해 노후를 보내는 4000만 일본 노인들은 연금 감액에 분개했다. 반면 연금을 내야 하는 젊은층은 ‘우리도 힘들다’며 맞섰다. 연금 감액을 다룬 뉴스에는 이례적으로 댓글이 1000개 넘게 달렸다.
◇일본, 현역세대 위해 2년째 연금 삭감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2년 연금 지급액을 전년 대비 0.4% 감액했다. 지난해 0.1% 감액에 이어 2년 연속 연금액이 준 것이다.
닛케이신문은 “연금 지급액은 매년 4월에 작년 물가와 임금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코로나로 현역 세대의 임금이 줄어들자 연금액도 같이 줄어들었다”면서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금액 감소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인플레 여파로 물가가 크게 올랐는데도 일본 정부는 반대로 연금 수령액을 깎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04년 도입한 ‘매크로 경제 슬라이드’ 제도 때문이다.
현역 세대의 과도한 부담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의 사회 상황(현역 세대 인구 수와 평균 잔여 수명 증가 등)을 고려해 연금액을 자동 조절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노인층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 활동층의 수입이 줄자, 이에 연동해 고령층 연금을 깎았다.
이 같은 일본의 ‘매크로 경제 슬라이드’ 제도는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연금 파탄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 고이즈미 정권은 지난 2004년 지지층 감소를 감수하면서 과감한 연금 개혁에 나섰다. 기성 세대는 파탄날 것이 뻔한 연금 재정 성적표에 한 발 물러섰고, 연금액이 줄어들 수 있는 제도 도입에도 결국 수긍했다.
◇한국은 물가 반영해 매년 증가
한국도 일본 고령층처럼 노령 연금액이 깎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일본에 비해 연금 역사가 47년 늦은 한국은 아직은 일본처럼 마이너스 연금 사태가 터진 적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반영해, 매년 초 연금액을 발표한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민연금 수급액은 매년 0.4~2.5%씩 올랐다. 역사상 가장 높은 상승률은 1998년(7.5%)이었다. 올해 연금액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영되면서 2.5% 올랐다.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면 매달 추가로 2만5000원씩 더 받는다.
‘물가 반영’은 정부가 앞장서서 홍보할 정도로 국민연금이 갖는 최대 장점이다. ‘물가가 오르면, 내 연금액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으면 연금의 실질 가치는 하락하니까 ‘물가 반영’은 수급자에게는 굉장히 유리한 장치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기초연금, 군인연금도 같은 방식이다. 민간 금융회사가 파는 사적연금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법대로 하면 물가가 마이너스면 연금을 깎아야 한다. 하지만 설사 물가가 내린 적이 있었다고 해도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감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연금을 삭감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공무원연금 5% 늘어날 듯
올해 2.5% 늘어난 연금액은 내년엔 5%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연금액에 물가가 반영되는데, 최근 국내 물가가 급등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지난 21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의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금 전문가 A씨는 “인플레이션 시기는 누구나 고통받지만, 국민연금 600만명과 공무원연금 61만명, 기초연금 630만명 등의 고령층은 연금액이 5% 이상 증가해 소득이 늘어나게 된다”면서 “특히 공무원연금은 수급액이 300만원 정도로 큰 만큼, 5% 상승하면 혜택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자들의 연금액 증가는 결국 현역 세대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0%는 가입자 수와 인구 구조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고 있다”면서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최소화하고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은 연금액 자동 조절 장치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제도 도입시 최저 수준 이상 연금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중간 이하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완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