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매월 미국 S&P500지수와 국내 증시의 코스피 200 지수를 각각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조금씩 매수하고 있다. 김씨는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사면 우량주에 분산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최근 ETF 투자를 시작했다”며 “거래가 쉽고 수수료율도 낮은 ETF에 비해 기존 펀드들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구닥다리’ 상품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올해 국내에 도입된 지 20주년이 된 ETF가 국내 금융 상품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의 순자산은 73조9825억원으로 거래가 시작된 첫해인 2002년(3444억원)의 200배가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단기금융펀드(MMF)를 제외한 전체 펀드 순자산 중 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는 추세다. 2018년 말 28.6%에서 지난 7일 기준으로는 38.7%까지 상승했다.
◇쉬운 거래, 낮은 수수료가 장점
ETF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나 네이버 같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처럼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됐다. 올 들어 지난 8일까지 개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다섯째로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KODEX 레버리지(1조3443억원)다. 코스피 200 지수 하루 상승률의 2배만큼 수익이 나는 ETF다. 삼성전자 보통주(15조1869억원)와 네이버(2조560억원), 카카오(1조7626억원), 삼성전자 우선주(1조4953억원) 다음으로 이 ETF를 많이 순매수한 것이다.
ETF가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쉬운 거래 방식이다. 개별 기업 주식처럼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되기 때문에 쉽게 사고팔 수 있다. 예를 들어 11일에 ETF를 매도하면 개별 주식과 동일하게 이틀 뒤인 13일(2거래일 뒤)에는 매도 대금을 인출할 수 있다. 반대로 해외 주식형 펀드는 환매하고 돈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펀드별로 차이는 있지만 미국 주식형 펀드의 경우 보통 환매 신청 후 3거래일 뒤의 가격으로 환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자가 환매 신청을 한 이후의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없고, 신청 후 대략 6~7거래일 이후에 돈이 계좌로 들어오게 된다.
ETF는 수수료율도 기존 펀드에 비해서 낮다. 예를 들어 코스피200 지수를 추종하는 지수형 펀드의 수수료율은 0.06~1.555%로 ETF(0.012~0.34%)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ETF의 주요 투자 종목과 비율을 한국거래소나 자산운용사 홈페이지에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국내에 ETF를 도입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4~5년 전에는 홍콩보다 ETF 시장이 더 작았는데 이제는 다른 아시아 국가가 우리나라를 부러워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상장이 시작된 액티브 ETF(펀드매니저가 일정 수준 자율적으로 운용하는 ETF)를 바탕으로 기존의 펀드를 더 빠른 속도로 대체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해외 상품과 경쟁도 치열해져
ETF 시장이 성장하면서 자산운용사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2018년 말에는 KODEX라는 상징적인 ETF 브랜드를 보유한 삼성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이 53.1%로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23.9%)의 2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 7일 기준으로는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점유율이 38.1%로 1위 삼성자산운용(41.5%)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경쟁 속에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났다. 2002년 10월 ETF 시장이 문을 연 당시에는 ETF가 4종목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592종목까지 늘어났다.
20년간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최근 해외 증시 상장 ETF를 더욱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지난달 22일까지 해외 증시에 상장된 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을 57억4400만달러(약 7조5000억원) 순매수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4조5400억원)와 ETN(2480억원)을 순매수한 금액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