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면 공매도뿐만 아니라 증시안정기금도 활용하겠다.”(김주현 금융위원장)
“지금이 립서비스나 할 때냐. 당장 금지해야 하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개인 투자자들)
증시가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 취임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공매도 금지 등도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자 개인 투자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나중에 시장에서 사서 다시 갚는 매매 기법이라 주가가 하락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올 들어 12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가 22.2% 하락하는 등 증시 약세가 이어지자 공매도를 막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공매도가 실제로 주가 하락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다. 한국거래소도 최근 금융위에 “공매도와 주가 하락에 뚜렷한 연관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개미들 “코스피 1700 가야 금지하나?”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등 소액주주 커뮤니티에서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불만을 표시하는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투자자는 “개인들 다 죽고 나서 이제야 검토하냐”고 했고, 다른 투자자는 “(금융위가) 뒷북치려고 폼만 잡는다”고 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인 지난 2020년에는 주가가 폭락하자 코스피 지수 1700선이 깨진 3월에야 금융 당국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는데, 이번에도 코스피가 2000이나 1700 수준까지 떨어져야 금지할 것이냐고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를 검토한다니) 이전보단 그래도 전향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한 2020년 3월 16일부터 지난해 4월 30일 사이에 코스피는 77.7% 상승했다. 이 때문에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이 주가 추가 하락을 막을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에, 단순히 공매도 금지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거래소 등에서도 “공매도가 허용된 종목이 다 하락한 것도 아니고, 공매도가 금지됐다고 주가가 다 오르지도 않았다”고 지적한다.
◇주요국과 비교해 공매도 비중 높지 않아
과거에도 주가가 하락하는 시기에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증명된 적이 없다. 그래서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할 때도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또한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가가 하락할 때 시장에서 다시 주식을 사서 갚아야 마무리된다. 이때 주식을 사는 것이 주가의 추가 하락을 막아준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코스피 시장에서는 전체 거래대금 중 공매도 거래 대금의 비율이 7.1%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해외 선진 증시에 비해서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증시에서 공매도 거래 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6.7%였고, 일본 증시에서도 41.4%로 40% 이상이었다.
또한 지난해 5월 국내에서는 코스피 200 지수 구성 종목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공매도가 재개됐다. 그런데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공매도가 가능한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 200 지수가 21.8% 하락할 때, 코스피 200 지수 종목을 제외한 지수는 24.9% 하락했다.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의 주가가 더 하락한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공매도 발언에 대해 “증시 안정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지 않다는 원칙론적인 발언이었다. 증시안정기금도 마찬가지”라며 “최근 폭락 장세에서 증안기금과 같은 자금으로 시장을 떠받친 나라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공매도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나중에 주식을 사서 되갚는 투자 방식.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번다. 공매도는 주로 외국인과 기관이 활용하고, 개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3% 정도로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