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8)씨는 지난달 미국 2분기 경제성장률 발표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등을 앞두고 3배짜리 나스닥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를 샀다. 나스닥 100 지수 하락률의 3배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와 달리 나스닥 100 지수는 상승세를 보였다. 김씨는 “그동안 나름 악재를 예측해 인버스 ETF로 수익을 올렸는데 너무 자신만만했었던 것 같다”며 “이대로 지수가 반등하면 손실을 피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같은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하반기 들어 주가가 떨어져야 수익을 내는 인버스 상품에 많이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7월부터 지난 8일까지 서학개미들의 순매수 상위 5개 종목 가운데 3개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이었다. 서학개미들이 올해 상반기에 지수가 오를 경우 2~3배 수익을 내는 레버리지 ETF에 많이 투자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나스닥 100 지수 등이 대체로 상승하면서 서학개미들이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학개미들의 예측 벗어난 시장

인버스를 선택한 올해 하반기 서학개미들의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서학개미 순매수 2위인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쇼트 QQQ’의 가격은 하반기 들어 35.8% 하락했다. 이 상품은 나스닥 100 지수에 연동된 3배짜리 인버스 ETF다. 순매수 3위인 ‘디렉시언 데일리 세미컨덕터 베어 3X’의 수익률도 -43.5%다. 이 상품은 반도체 지수 하락률의 3배만큼 수익이 나도록 설계됐다.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 ‘하락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서학개미의 예측은 빗나갔다. 6월 말 1만1503.72였던 나스닥 100 지수는 지난 8일 1만3159.16까지 올랐다. 하반기 들어 14.4% 상승한 것이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변동성지수·Volatility Index) 단기 선물 지수 하루 상승률의 1.5배만큼 수익이 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 VIX 쇼트-텀 퓨처스’도 하반기 서학개미 순매수 5위(2700만달러 순매수)였지만, 수익률은 -31.8%에 그쳤다. 이 상품은 인버스 ETF는 아니지만 S&P500지수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하락에 베팅하는 종목으로 통한다.

서학개미들은 상반기에는 지수가 상승할 때 몇 배 수익이 나는 레버리지 ETF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경우가 많았다. 올해 상반기 서학개미 순매수 2위(20억8800만달러)였던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는 1~6월에만 71.1% 떨어졌다. 이 상품은 나스닥 100 지수 상승률의 3배만큼 수익이 난다.

◇2020년 ‘곱버스’ 악몽 재현되나

개인 투자자들은 2020년에 국내 증시에서 인버스 ETF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200 지수 하루 하락률의 2배만큼 수익이 나는 ‘KODEX 200 선물 인버스 2X ETF’를 3조5862억원어치 순매수했었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3월 급락했던 지수가 반등하자 ‘지수가 계속 오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 ETF를 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ETF는 2020년 한 해 동안 -59%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 중 수익률이 최하위권이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의 많은 부분을 인버스나 레버리지 ETF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일단 개인 투자자가 개별 종목도 아닌 지수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수가 등락을 거듭하면서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도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의 수익률은 마이너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지수가 30% 하락할 경우 3배짜리 인버스 상품은 수익률이 -90%로 떨어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본부장은 “레버리지·인버스 ETF는 지수가 횡보만 하더라도 손실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시장의 방향성 예측을 기반으로 한 투기적 매매보다는, 기존의 포트폴리오를 보완할 수 있는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