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올 연말보다는 내년 초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퇴직자들이 내야 하는 세금 부담이 내년에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말연시 언제 사표를 내느냐에 따라 내야 할 세금이 최대 1000만원까지 달라질 수 있다.
지난 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22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퇴직소득세를 계산할 때 적용하는 근속연수공제액 기준이 내년부터 대폭 완화된다. 관련 제도가 도입된 지난 1990년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근속연수공제액은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수록 높아지는데, 공제액이 커지면 그만큼 퇴직금에서 떼어가는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현행 기준으로 근속연수공제액을 살펴 보자. 한 직장에서 5년 일하고 퇴직하면 공제액이 150만원이다. 10년 일하면 공제액이 400만원으로 커지고, 20년 일한 경우엔 1200만원이다. 30년 일했다면 2400만원으로 더 커진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근속연수공제액 자체가 크게 올라간다. 내년부터 5년 일하고 퇴직하는 경우 근속연수공제액은 500만원으로 늘어나며, 10년은 1500만원, 20년은 4000만원, 30년은 7000만원까지 늘어난다. 고령화로 퇴직 후에 더 오래 살아야 하는 데다 그 동안의 물가 상승 부분까지 반영됐다.
퇴직소득세는 복잡한 산식을 거쳐 결정된다. 통상 퇴직금에서 근속연수공제액을 빼서 환산급여를 산출하고, 여기에 근속연수, 추가공제 등을 또 반영해서 과세표준을 완성한다. 세율은 소득세 세율(6~45%)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정부 세제개편안에 따라 올해와 내년 퇴직소득세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의 ‘퇴직소득세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퇴직금 1억원을 받은 20년 근속자의 경우, 올해 퇴직할 경우 퇴직소득세는 295만원이지만, 내년에는 123만원으로 줄어든다. 감면비율은 58.2%에 달하고 경감세액은 172만원이다. 퇴직금 10억원을 수령하는 20년 근속 고소득자는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 퇴직하면 세금을 899만원 줄일 수 있다.
퇴직금 액수가 같아도 근속연수가 길수록 감면비율이 커진다. 가령 30년 일하고 퇴직금 1억원을 받는 경우, 올해 내야 할 퇴직소득세는 148만원이지만 내년은 26만원으로 82.1% 줄어든다. 반면 10년 일하고 퇴직금 1억원을 받는 사람의 감면 비율은 22.2%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본부장은 “퇴직금은 노후의 소중한 재원인데, 세금이 줄어들면 그만큼 퇴직자가 받게 되는 금액이 늘어난다”면서 “올해 12월 31일과 내년 1월 1일은 하루 차이이지만 내야 할 퇴직소득세는 크게 차이난다”고 말했다. 또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수령하지 않고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이체해 연금으로 받으면 추가로 세금을 30~40% 감면받을 수 있다고 김 본부장은 덧붙였다.
한편, 세수 확보를 우선시하는 기획재정부가 이처럼 32년 만에 퇴직소득세를 손보게 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퇴직금 감세 공약을 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5000만원 이하 퇴직금에는 세금(퇴직소득세)을 물리지 않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는 “새로운 인생 설계 종잣돈인 퇴직금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것은 가혹하다”며 “퇴직소득세는 금액도 부담될 뿐 아니라 재직 중에 납부하는 세금보다 상실감이 더 크다”고 지적했었다.
내년에 세제 개편안이 시행되면, 20년을 일하고 퇴직금 5000만원을 받는 사람의 퇴직소득세는 현행 59만원에서 0원으로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