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인기 TV드라마 ‘전격Z작전’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가 중국에서 살아났다. 그것도 ‘택시’로 부활해 손님을 태우고 다닌다.

지난 25일 일본 후지TV는 운전자와 안전요원 없이 완전 무인(無人)으로 달리는 ‘바이두 무인택시’를 소개했다. 바이두는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빅테크 기업이다. 한국 네이버처럼 검색엔진 기업으로 출발했다. 일본 후지TV 기자는 현지에서 직접 바이두 무인택시를 호출해 체험해보는 모습을 생생히 보도했다.

취재기자는 방송에서 “오오, 문이 닫히고 모니터에서 출발 버튼을 누르니 바로 움직입니다, 오오, 모니터로 보니 택시를 추월하려는 다른 차까지 인식하고 있네요. 차선 변경까지 하네요. 오오, 핸들이 왼쪽으로 돌더니 유턴했습니다”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운전석 헤드에 붙어 있는 모니터에서 ‘출발’ 버튼을 누르면 핸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운행을 시작한다./후지TV
중국 현지에서 직접 바이두 무인택시를 타본 일본 후지TV 기자는 "도로 합류지점에서도 다른 차량을 확인하면서 잘 진입하고, 교차로 유턴도 무리없이 해냈다"고 말했다./후지TV
무인택시 주행이 허용되어 있는 구획 곳곳에 카메라와 전용 레이다가 설치되어 있다. 어디에 차와 사람이 있는지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다./후지TV

바이두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자율운행 택시를 시범 운행해 왔다. 하지만 비상 상황에 대비해 안전요원이 항상 동승해 완전 무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지난 8일 ‘자율주행차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충칭(인구 3000만명)과 우한(인구 1100만명) 지역의 무인택시 운영을 허가해주면서 중국에선 처음으로 승객만 타는 ‘완전 무인 택시’가 등장했다. 웨이동 바이두 자율주행그룹 부사장은 이달 초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무인택시 운행은 우주 탐사에 빗대자면 달 착륙(landing on the moon)과 같은 순간”이라며 “중국 자율주행차 정책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는 자율주행 수준에 따라 레벨0~5까지 6단계로 나뉜다. 충칭 지역에서 달리는 바이두 무인택시는 레벨4로, 복잡한 도심에서도 자동차가 모든 주행을 책임지며 돌발 상황에서도 스스로 대처한다.

바이두 무인택시는 주간에만 운행되며 기본요금이 약 3000원으로, 일반 택시의 1.6배 정도다. 승객은 휴대폰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면 되는데, 지정 정류장 70여곳에서만 타고 내릴 수 있다. 택시 주행 상황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며,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원격으로 차를 조작해 승객 안전을 확보한다.

바이두 택시의 인공지능 시스템에는 해당 지역의 데이터를 숙지한 초정밀 지도가 탑재되어 있다. 차량 주행상황은 중앙 데이터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한다./후지TV

충칭 현지 택시기사들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운전수가 없는 택시는 신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업계 경쟁으로 보면 솔직히 위협이 되긴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바이두 무인택시 뉴스를 접한 일본 시청자들은 “중국 자율주행차 기술력이 벌써 이 정도가 됐느냐”면서 격차를 뼈아프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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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든든한 지원을 해주니까 민간기업이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여러 규제와 장벽이 많고, 고령자들이 타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일본인A씨)

중국 기술력이 여기까지 왔다니. 놀랍다. 이런 기세라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업계도 곧 추월당하고 일본은 세계에서 아무 경쟁력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릴 것이다. 기술력도 물론이지만, 중국의 챌린지 정신을 일본 기업들이 배워야 한다.(일본인B씨)
중국 바이두가 지난 7월 공개한 자율주행차인 '아폴로 RT6'의 실내 모습. 운전자 개입이 필요없는 '레벨4' 수준의 고도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했다. 운전대는 탈부착이 가능하다./바이두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현지의 자동운전 택시 시장 규모는 6년 후에 약 4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바이두는 신형 자율운행 택시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지난 7월 바이두가 야심차게 선보인 무인택시(아폴로 RT6)는 앞좌석에 핸들이 없다<위 사진>.

이번에 운행을 시작한 택시와 똑같은 레벨4 기술이 탑재돼 있는데, 제조 비용이 4800만원 정도로 기존 차량의 절반이어서 화제가 됐다. 바이두는 오는 2030년까지 중국 100여개 도시에 자율운행 택시를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차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면서 “바이두는 10여년 전부터 자율주행차의 중요성을 깨닫고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서비스는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주행 중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인지 각종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실제 주행을 통해서 스스로 수집해야 한다. 누적 데이터가 많을수록 앞서가는 것은 물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바이두의 자율주행차 시험운행 누적거리는 약 3000만km로, 이는 지구둘레 750바퀴에 해당된다. 이번에 충칭과 우한에서 무인택시 운행 허가를 받기 위해서도 장시간 시험 운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바이두의 무인택시는 도시의 정해진 구역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등 아직 한계는 있다”면서도 “막대한 자금과 고급 인재, 기술력, 정부 지원 등으로 똘똘 뭉친 바이두는 글로벌 선두에서 달리고 있으며, 그에 견줄 만한 경쟁력 있는 기업이 한국에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운전대가 없는 바이두의 자율주행차 아폴로 RT6. 제조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오는 2023~2024년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연합

바이두는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중국 강세론자인 레이 달리오가 지난 2분기(4~6월)에 대다수 중국 주식을 올매도하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지분을 늘린(2%) 빅테크 종목으로 알려지며 눈길을 끌었다. <월가 구루들의 금리 인상기 투자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조선닷컴)>.

아래 그래프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바이두 주가 추이다. 지난 2005년 8월 상장 이후 1133% 올랐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는 약 500% 올랐다.

한국은 중국의 자율주행차 수준인 레벨4 이상의 서비스를 내놓은 기업이 한 곳도 없다. 현대차가 레벨3을 넘어 레벨4에 도전할 예정이다. 다만 축적된 자율주행 데이터 양은 중국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KAIA) 회장은 이달 초 열린 정책포럼에서 “레벨4 자율주행차의 경우, 한국은 선두 주자인 미국과 중국에 비해 기술력이 뒤처져 있다”면서 “선도국과의 격차를 축소하려면 주행데이터 축적을 위한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임경업 산업부 기자의 심층 보도 기사(美·中 벌써 무인택시 운행… 한국은 신청업체도 없다)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