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四惡:연금격차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주식과 부동산은 하락하니 은퇴 계획 짜기가 너무 어렵네요.”

유례없는 고물가 속에 자산시장 부진까지 겹쳐지면서 예비 은퇴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때문에 은퇴시계를 지금보다 뒤로 늦추겠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는 “내년 은퇴를 아내와 상의 중이었는데 집값과 주식이 빠지고 생활 물가도 급등해 불안하다”면서 “노후 대비 준비 금액과 은퇴 시점을 수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본부장은 “화폐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은 자산시장에선 ‘소리없는 도둑’이라고 불린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노후 자산을 갉아먹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은퇴자들의 적(敵)”이라고 말했다. 1980년 이후 우리나라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3.6%,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현재 10억원은 20년 후엔 5억원의 가치로 쪼그라든다.

인생 후반전에는 젊을 때보다 인플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그래픽=정다운 조선디자인랩 기자

노년에 우아하게 남미크루즈를 탈 수 있을 지, 나가는 돈 무서워 지인과 연락을 끊고 살지는 은퇴자산 관리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모범 답안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물가가 오르는 만큼, 연금액도 따라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가 반영’이야말로 가입자에게 매우 유리한 장치다. 정부가 앞장서서 홍보할 만한 포인트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군인연금, 기초연금도 같은 방식이다.

김동엽 본부장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수 있는 은퇴 자산으로는 국민연금이 최선의 선택”이라며 “물가상승률이 반영된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저물가 시대여서 별로 티도 안 났지만, 앞으로 진행될 고물가 시대엔 국민연금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연금은 작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올해 연금액이 2.5% 늘어났다. 내년엔 지금보다 5%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물가가 연일 급등하고 있어서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대 초반까지 크게 올려 잡았다.

국민연금은 전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인상된다./자료=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고령화 시대에 고물가까지 진행되면서 국민연금으로 맞벌이하는 노년 가정과 그렇지 않은 연금 외벌이 가정의 격차도 더 벌어질 전망이다.

5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의 월평균 연금액은 평균 94만원이었다. 20년 동안 맞벌이를 하면서 버텨왔던 부부와 같은 기간 남편만 연금을 부어 왔던 외벌이 가정의 연금 격차는 1년에 약 1100만원. 국민연금은 종신연금이기 때문에 1100만원의 연금격차는 한 해에 그치지 않고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할 때까지 쭉 이어진다.

이미 국내에서도 황혼기 부부 52만쌍이 국민연금을 동시에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일본처럼 한국에도 본격적인 연금격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부부가 합쳐 매달 300만원 이상 받는 경우도 올해 200쌍을 넘어섰다. 한 달에 435만원씩 연금을 받는 행복한 부부도 등장했다.

노후 전문가들은 젊을 때는 국민 연금을 가입하지 않았던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어도 막상 50~60대가 되면 뒤늦게 중요성을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특히 남편의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시점에 주부들이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것을 속상해한다고 한다.

김동엽 본부장은 “국민연금은 납부기한일로부터 3년이 지나면 미납 처리가 되어 본인이 내고 싶어도 낼 수 없고 강제 징수도 불가능하다”면서 “젊을 때 일하면서 내지 않았던 국민연금을 나중에 내려고 해도 납부 예외 신청을 해두지 않았다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임의가입자는 납부 기준이 되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최소 9만원에서부터 최대 49만7700원까지 스스로 정해서 넣을 수 있다./자료=국민연금공단

오래 살아야 하는 장수 사회에서 인플레이션은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노후 자금이 부족해서 연금에 가입한다면 일반 금융회사들이 파는 사적연금보다는 국민연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면서 “환급률로 따지면 최저금액(월 9만원)을 낼 경우지만, 자금 여력이 있다면 최대 금액(49만7700원)까지 채워 노후에 넉넉히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매달 49만 7700원씩 20년을 넣고 65세가 됐을 때 예상 수령액이 월 83만원에 달하고, 그 돈을 죽을 때까지 주면서 매년 물가 상승까지 반영되는 연금 상품은 시중에 없기 때문이다.

단, 만 65세 이후에 소득 하위 70%에 속해서 정부가 주는 기초연금(월 40만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면, 국민연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이 오히려 독(연금 삭감)이 될 수 있으니 가입 전에 잘 따져봐야 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 더 알고 싶다면(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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