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은 살던 대로 사는데 남편이 끼어든 것이 은퇴 후 부부다.” “나이 들어서 잘 사는 비결은 서로가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 또는 옆집 아줌마 보듯 여유를 갖고 이해해 줘라.” “평상시에 알콩달콩 살아야지, 늘그막에 갑자기 부부 관계 챙기려고 들면 괜히 어색해진다.” “30~40년간 직장생활하며 가정을 지켜왔는데, 그 노고를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잘못된 것인가.”

지난 달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의 ‘은퇴하면 부부 공통 취미부터 갖겠다고? 커다란 착각’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일본의 노후 전문가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와의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오오에씨는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38년 일한 증권맨으로, 개인 자산운용과 기업연금 자문역 등으로 일하다가 퇴직했다. 은퇴 준비 관련 서적만 33권 펴낸 노후 전문가다.

오오에씨는 지난달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현역 시절엔 자산이 크든 작든 꾸준히 늘어나지만 은퇴 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든다”면서 “노후에는 감축(減縮)하는 삶에 적응해야 하는데,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먼 일로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퇴직이 태풍처럼 몰아쳤다’면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다음은 총 3회에 걸쳐 조선닷컴에 게재한 오오에씨와의 인터뷰 중 마지막 편이다.

부인이 집안일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령자는 여전히 많다(52.6%). 그래도 10년 전(71.6%)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은퇴 후 자산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20년 미국에서 출간된 ‘다 쓰고 죽어라(Die with Zero, 빌 퍼킨스, 한국 미발간)’라는 책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돈을 전혀 안 쓰고 계속 모으기만 해서, 결국 죽을 때 가장 돈을 많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쌓기만 할 게 아니라 ‘체험’에 쓴다면, 눈을 감을 때 여러 추억들을 곱씹으면서 행복하게 인생을 마칠 수 있다. 여행을 가든, 자녀에게 증여하든, 기부를 하든, 어떤 방법도 좋다. 60대부터는 그때까지 모은 돈을 어떻게 잘 써서 인생을 충실하게 마무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저축(貯蓄)보다는 감축(減縮), 자산을 줄이는 것이다.”

–이전 인터뷰에선 정년 남편의 할 일에 대해 주로 얘기했다. 아내는 어떤가.

“은퇴한 남편은 가사일에 협력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이 청소나 세탁을 하는데, 아내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남편에게 불평하거나 잔소리하면 안 된다. 노력하는 남편을 칭찬해 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한평생 일했는데, 은퇴 후에 노고를 인정받으려는 것이 나쁜가’ 이런 댓글을 남성이 달았다.

“부부는 타인이지만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존재다. 남편 혼자 힘으로 사회생활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전업주부 아내가 가사를 해결하고 자녀도 돌보면서 집안 대소사를 처리했기에 가능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놀면서 밥만 축낸 것이 아니다.”

오오에 히데키 오피스·리베르타스 대표. 리베르타스는 라틴어로 자유라는 의미다. 노무라증권에서 38년 일하고 정년 퇴직한 뒤 경제칼럼니스트로 활약 중이다./본인 제공

–퇴직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역 시절에 친구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라. 친구들은 회사에서 찾지 말고, 회사 밖의 공간에서 사귀어놔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집안일은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사소한 것부터 찾아서 하라. 예를 들어 화장실 수납장에 여분 휴지가 없다면 채워 넣는다거나, 조미료통이 비어 있으면 보충하고 집안 쓰레기를 모아서 밖에 버리고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두는 것 등이다. 이렇게 사소한 집안일을 점점 쌓아가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세입자처럼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노년 부부가 건강하게 롱런하는 비결이다.”

–노후 준비에 필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나는 키워드로 ‘WPP’를 얘기하고 싶다. W는 오래 일하기(work longer)이고 첫 번째 P는 사적연금(Private Pension), 두 번째 P는 공적연금(Public Pension)이다. 개인적으론 오래 일하는 W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노년기 건강을 유지하고 고독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재취업은 큰 도움이 된다. WPP를 야구에 빗대면, W는 선발투수, 첫 번째 P는 중간계투, 마지막 P는 마무리 투수다. 죽을 때까지 일해서 완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선발투수가 흔들리면, 중간계투인 사적연금이 등판할 차례다. 마무리 투수는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공적연금의 몫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고령자(65세 이상)의 노후 준비 방법은 국민연금(48.4%)이었다.

–아내는 남편보다 평균수명이 길어서 10년은 혼자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성도 일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현재의 수입도, 미래의 연금도 늘어나게 된다. 일본은 연금을 받는 시기를 늦출수록 연금액이 늘어난다. 한국에도 그런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오래 일해서 연금을 받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뒤로 늦추고 연금액을 길게 받는 것이 좋다. 젊을 때 조금씩 투자를 지속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은퇴 공식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부부가 모두 완전히 은퇴하는 경우, 각자가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둘이 똑같은 취미를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서로가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를 갖는 것이 최고다. 부부가 각자의 취미가 생긴다면, 서로 상의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65~79세 고령자의 54.7%는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생활비 보탬' 목적이 53.3%로 가장 많았다.

–보험은 꼭 필요한 상품으로 압축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보험 가입 대원칙은 ①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②만약 발생하면 내 저축으로는 지불할 수 없고 ③그 일이 언제 생길 것인지 알지 못하는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를 타다가 사망 사고를 일으킨다면, 내 돈만 갖고선 보상해주기 힘들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필요하다. 화재보험(지진보험 포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면 종신보험은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부모가 변을 당해도 자녀의 생활은 힘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선 고금리 채권이 은퇴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주의점은?

“미국을 비롯,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상승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채권 가격 변동의 주요 요인은 금리다. 즉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금리와 채권값은 반대 관계). 그런데 주식은 하락장에서도 실적이 좋은 곳이라면 주가가 오르지만, 채권은 하락장에선 일제히 가격이 다 내려가니까 도망칠 방법이 없다. 때문에 금리 상승 우려가 높은 시기에는 채권 매수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