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부터 피곤하지 않은 집안일’ ‘남편은 모르는 집안일 리스트’ ‘가사가 얼마나 힘든지 이제 깨달으셨나요?’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 살림’ ‘집안일이야말로 최강의 비즈니스 트레이닝’...

일본 서점가에 나와 있는 책 제목들이다. 일본에는 가사(家事)를 주제로 한 책들이 넘쳐난다. 하면 할수록 끝이 없고, 몸은 힘든데 이렇다 할 보상도 없는 것이 집안일이다. 책에는 부부가 어떻게 집안일을 편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지 요령을 알려준다. 부부 각자의 수명 뿐 아니라, ‘부부 관계’의 수명도 함께 길어진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에는 자녀 출가 후에 부부 둘이서 30년 이상 생활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는 집안일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일본에선 은퇴 가정의 감정 마찰을 줄이기 위해 부부가 집안일 분담부터 잘해 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샴푸와 린스, 섬유유연제 떨어지기 전에 사두기’ ‘세탁기의 먼지 필터 교체하기’ ‘로봇 청소기 돌리기 전에 바닥에 있던 물건 치우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서 재밌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먼저 우리나라 은퇴 부부의 현실부터 살펴보자.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은퇴 남성들은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만족도가 훌쩍 높아졌다. 지난 2010년만 해도 ‘아내와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남성 응답자는 전체의 63.2%였는데 10년 후인 2020년에는 68.8%로 더 높아졌다.

반면 아내들은 생각이 달랐다. ‘남편과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0년새 53.8%에서 52.5%로 낮아졌고,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9.7%에서 10.8%로 높아졌다. 오현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팀장은 “65세 이상 고령 남성은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가족관을 갖고 있어서 은퇴 후 집에 있어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반면, 고령 아내는 은퇴 남편 뒷바라지라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의 저자 한혜경씨는 “은퇴 부부는 돈이나 자녀 얘기 외에 집에서 나눌 대화 소재가 많지 않고, 함께 하는 활동도 거의 없다”면서 “결혼 초기와 중년기에는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노력하던 부부도 세월이 흐르면 상대방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접게 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 이후 소원해진 부부 사이를 회복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최근 40~60대 남성 8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봤다. 그 결과, 아내와 친해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체 응답자의 57.9%가 ‘청소·설거지 등 가사 노동’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많은 응답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둘만의 데이트(19.7%)’가 꼽혔다.

한혜경씨는 “나이 들수록 집안의 권력은 부엌에서 나온다”면서 “그냥 도와주는 척 하지 말고 직접 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건 남편이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든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은 ‘남해밥(남편이 해주는 밥)’이라는 것이다. 가장의 권위와 체면을 확인하는 곳이 밥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밥상은 밥상일 뿐이다. 만약 요리가 벅차고 어렵다면 빨래나 청소를 도맡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씨는 덧붙였다.

서툴러도 남편이 친한 척 하면서 부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아내들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의 저자 박경옥씨는 “주인공은 늦게 나온다는 말처럼, 본격적인 부부 생활은 퇴직 이후에 시작된다”며 “돈이 안 들어오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큰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상대방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주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